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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임청각? 독립운동의 산실!

임청각은 독립운동의 산실

숭고한 희생 보여준 독립운동가 6명은 누구?


문재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임청각을 언급하자 순간 접속자가 몰리면서 임청각을 소개하는 누리집이 마비되었습니다. 경북 안동에 소재한 임청각은 2016년 5월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 대통령이 방문하여 복원을 약속했던 곳입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충절의 집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멸사봉공 애국애족 정신을 새기며 임청각의 완전한 복원을 다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일제가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을 내는 바람에 절반만 유지되어왔는데, 이제 원형 복원 사업이 추진 중에 있습니다.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에서 기사 원문 자세히 보기



(사진=석주 이상룡 선생(왼쪽) 국가보훈처 제공/ 임청각(오른쪽) 안동임청각홈페이지 제공)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생가가 임청각입니다. 선생을 중심으로 아들 이준형 공, 손자 이병화 공, 동생 이상동 공, 조카 이형국 공, 이광민 공 등 독립운동가만 모두 9명을 배출했습니다. 부인 김우락 여사와 며느리 이중숙 여사, 손부 허은 여사까지 하면 12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셈입니다. 


한편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 6인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숭고한 희생을 기렸습니다. 






이태준 선생(1883~1921)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1883~1921) 선생은 열렬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여 활동했습니다. 


일제가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한 이태준 선생은 몽골로 망명했습니다. 근대 의술로 몽골 사람들을 치료하며 황제의 주치의까지 지낸 그는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습니다. 1980년 건국공로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습니다.


(사진=대암 이태준 선생, 출처 반병률 교수)








장덕준 선생(1892~1920)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장덕준(1892~1920) 선생은 한국 언론사상 첫 순직 기자입니다.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한 선생은 일본의 3·1운동 왜곡을 비판하는 논설을 썼습니다. 


1920년 만주에서 청산리 대첩에 대한 일본군의 보복으로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한 ‘경신참변’이 발생하자 현장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습니다. 그는 취재 중 소식이 끊겼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은 그가 일본군에 암살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진=장덕준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남자현 여사(1872~1933)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1872~1933) 여사는 3·1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단체에 가담했습니다. 


북만주 일대에서 여성 계몽운동을 펼치고 부상한 독립군 치료에 힘을 쏟았으며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독립군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1933년 일본 고위관리 암살을 위한 무기를 운반하다 하얼빈에서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순국했습니다. 


(사진=남자현 여사, 국가보훈처 제공)









김용관 선생(1897~1967)


과학자 김용관(1897~1967) 선생은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일본 유학 중 근대화의 뿌리가 발명과학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하고 우리 민족의 힘을 기르는 데도 과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32년 ‘발명학회’를 조직, 1933년 우리나라 최초의 발명과학 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했습니다. 일본의 탄압 가운데서도 발명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사진=김용관 선생,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나운규 선생(1902~1937)



영화감독 나운규(1902~1937) 선생은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습니다.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자 북간도로 이주했습니다. 철도와 통신 등 일제의 기관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독립군으로 활약했으며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1926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해 주목받았으며 독립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랑을 찾아서’, ‘벙어리 삼룡’, ‘잘 있거라’ 등을 제작했습니다.


(사진=나운규 감독, 국가보훈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