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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자기주도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한국철학콘서트>와 <철학자의 조언>을 펴낸 홍승기 작가의 조언을 들어보세요. 우리에게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세상과 마주할 힘을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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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콘서트

(사진=홍승기│<한국철학콘서트>, <철학자의 조언> 저자)


얼마 전, 한 지인 모임에서 ‘한류’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본래 지인 모임이라는 게 그렇듯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최근 유행하는 대중가요나 TV 드라마 얘기에서부터 외국 여행 중 보거나 들었던 것, 어디에서 주워들은 짧은 정보까지 두서없이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우리나라에는 전 세계에 수출(?)할 철학이 없을까?”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얘기의 취지는 이러했다. 외국에는 플라톤이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이 있고 오늘날에도 그들이 쓴 저작을 고전이라며 전 세계에서 읽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럴 만한 철학자도 저작도 없지 않느냐, 이런 얘기였다.


철학


기발한 문제 제기에 재미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고전이나 철학에 대해 오해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은 대작(大作)이어야 한다, 철학은 유럽 이외에는 없다, 철학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다 등등이 그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분량이 수백 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그렇지만 대작이기 때문에 고전인 것은 아니다. 대작 여부로 따진다면 조선말의 최한기를 따를 학자는 없다. 그는 1000권이 넘는 저작을 남겼다는데, 그중 분량이 수백 쪽 이상이 되는 저작도 여러 편이다. 문제는 관심도의 차이다. 


플라톤이나 칸트는 관심의 대상이지만 최한기는 그렇지 못하다. 관심도의 차이는 철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생겨난 ‘필로소피(philosophy)’를 번역한 말이다. 필로소피가 유럽에서 생긴 것이므로 유럽 이외의 지역에는 철학이 없거나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유럽의 필로소피에 해당하는 것을 ‘학(學)’으로 표현했다. ‘철학’이라는 번역어 자체가 ‘학’ 앞에 ‘밝을 철(哲)’ 자를 붙여 넣은 것에 불과하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나 중동지역에도 필로소피에 해당하는 개념이 존재했다. 따라서 철학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존재해왔다. 철학이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칸트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자신의 철학적 업적을 두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회(Copernican revolution)’라고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한 천문학자다. 칸트는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적 사실을 뒤집어놓았듯이, 자신이 철학을 뒤집어놓았다고 자부했다.

무엇을 뒤집어놓았다는 것일까? 우리 눈앞의 어떤 물체가 꽃이라는 것을 안다. 왜? 그것이 꽃이니까. 그런데 칸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물체를 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춘수의 시 <꽃>이 연상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선후관계를 뒤집어놓았다. 그 물체가 꽃이기 때문에 우리가 꽃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꽃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물체가 꽃이 되었다. 그러면 그 물체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칸트는 알 수 없다며, 그냥 ‘물자체(物自體)’라고 부르자고 했다. 납득하기 어렵지만, 일단계속 따라가보자. 


도대체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종교와 과학의 갈등 때문이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종교와 부딪쳤고, 때로는 종교가 과학을 박해하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위대한 발견을 하고도 박해가 두려워 발표하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한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아 자신의 주장을 부정해야 했다.




칸트의 시대에도 종교와 과학의 갈등은 여전했다.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종교가 과학의 발전을 제약하지 않게 할 방도를 찾았다. 그래서 물자체가 등장했다.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구분하고자 한 것이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물자체는 종교의 영역이므로 존중하고, 그 이외에는 과학의 영역이므로 종교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리고자 선후관계를 뒤바꾸었다. 이렇듯 칸트는 자기 시대의 절실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적 사실을 뒤집은 것에 착안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자. 칸트와 동시대의 인물인 홍대용은 ‘지구가 돈다’는 ‘지전설’을 주장한 학자이다. 그는 <의산문답>에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귀하고 사물이 천하지만,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하늘에서 보면 사람과 사물은 똑같다”라고 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단 하나의 중심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사물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그 말은 당시에는 혁신적인 발언이었다. 홍대용은 왜 그 말을 했을까? 화이관(華夷觀) 때문이었다. 화이관이란 중국 한족을 중심이라 하고, 다른 민족은 모두 오랑캐로 보는 세계관을 말한다. 이 화이관적 세계관은 홍대용이 살았던 시대의 병폐였다.


당시 중국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였다. 그래서 오랑캐의 나라라며 청나라와 접촉을 꺼렸다. 그런 태도는 조선의 발전에 저해가 되었다. 홍대용은 지전설을 활용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화이론을 극복하고자 했다.


지전설에 따르면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지구조차 수많은 행성의하나일 뿐이다. 인간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이 중심일 수는 없다. 화이관의 발단이 된 <춘추>에 대해 홍대용은 “공자는 주나라 사람이다. <춘추>는 주나라의 역사서다. 공자가 바다 건너 오랑캐들이 있는 곳에 거주했다면 ‘주나라 바깥의 춘추’가 생겨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과 밖의 차이일 뿐이라는 얘기다. 공자는 주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주나라 중심의 역사서를 썼다. 공자가 주나라 바깥 나라의 사람이었다면 그 나라 중심의 역사서를 썼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중심이라는 화이관은 버려야 한다.


칸트와 홍대용은 자기 시대의 발전을 저해하는 시대적 문제에 맞서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그것이 철학자가 하는 일이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찾은 해결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글을 썼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고전이 되었다. 철학은 삶 속에 있다. 시대적 문제라 해서 멀리 있지 않다. 시대적 문제란 다수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삶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정의가 그렇고, 평화가 그렇고, 평등이 그렇다. 삶과 긴밀히 연관된 관심사가 시대적 문제가 되고, 그것들을 생각해보는 데서 철학은 시작된다. 칸트와 홍대용은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고정관념에서벗어나지 못했다면 창의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에서 새로운 것은 등장한다. 무술년 설날을 맞으며, 고정관념을 벗어난 발상의 전환을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나 소망하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Posted by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