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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는 동화작가 신정민은 남이섬 평화랑에서 ‘고래가 있는 민화전(展)’을 지난 2월 25일까지 펼쳤습니다. 눈높이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동안 <수염전쟁>, <친절한 돼지 씨>, <이야기 삼키는 교실>, <툭> 등의 책을 냈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와 함께하던 고래로 작품활동을 펼치는 신 작가의 고래 우화 '몸에서 나무가 자란 날'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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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민의 고래 우화


01

어느 날 고래 코가 간질간질했어요.

“참을 거야. 참을래. 참아야 해!”

고래는 뒤통수에 달린 콧구멍을 꾹꾹 막았어요.

또 지난번처럼 벽이랑 천장에 콧물이 왕창 튀었다간 온종일 걸레질을 해야 할 테니까요.

“훌쩍훌쩍~ 큼! 큼!”

고래는 며칠 동안 재채기를 잘 참았어요.


신정민의 고래 우화


02

“어라, 이게 뭐지?”

며칠 뒤에 고래 콧구멍에서 조그만 고래 꼬리 같은 게 돋아났어요.

어쩌면 꼭 하트(♡)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한데 여러 날이 더 지나서 보니,

놀랍게도 그건 나무였어요.

“내 뒤통수에서 나무가 자라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지 뭐예요.


신정민의 고래 우화


03

“당장 뽑아낼까? 싹둑 잘라 버릴까?”

고민하던 고래는 일단 그냥 둬 보기로 했어요.

무슨 나무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도대체 얼마나 더 자랄지 궁금하기도 하고,

숨 쉬는 데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았거든요.

코 대신 커다란 입으로 얼마든지 숨 쉴 수 있으니까요.


나무는 자라고 또 자라났어요.

꿀꺽꿀꺽 고래가 마시는 물과 콧물 속의 양분을 먹고 쑥쑥쑥 잘도 자라났어요.


신정민의 고래 우화


04

“아하, 이제 보니 사과나무였잖아!”

고래 뒤통수에서는 사과나무가 자라나 주렁주렁 빨간 열매까지 탐스럽게 열렸어요.

고래는 사과나무를 마당에 옮겨 심었어요.

“아유, 맛나기도 하지.”

고래는 아삭아삭 사과를 먹으며 생각했어요.

“언젠가 내가 사과를 통째로 삼켰을 거야.”

“사과 속의 씨앗 하나가 용케도 콧구멍 어딘가에 달라붙었다가 싹을 틔웠던 거야.”


신정민의 고래 우화


05

고래는 사과 한 바구니를 따서 이웃집에 선물했어요.

또 한 바구니를 따서 친구에게도 선물했어요.

그러고도 사과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어요.

“만약 내 몸에서 사과나무가 아니라 밤나무, 대추나무가 자랐다면 어땠을까?”

“또 혹시 버드나무나 느티나무가 자랐더라면?”

고래 머리 속에서는 별별 나무가 다 자라서 어느새 숲을 이루고 있었어요.


신정민의 고래 우화


06

“아니 아니, 무거운 몸이 더 무거워지니까, 이런 것도 참 좋겠어.”

고래는 제 몸에서 상추, 고추, 깻잎이 자라는 모습을 떠올렸어요.

“그러면 언제든지 똑똑 따서 먹을 수 있을 거야.”

고래는 제 몸에서 온갖 꽃들이 알록달록 다투어 피어나는 모습도 떠올려 보았어요.

“그러면 벌과 나비들이 찾아와 꿀을 쪽쪽 마시고, 새들도 찾아와 신나게 놀겠지?”

어느새 고래 마음속은 풋풋한 풀 냄새,

은은한 꽃 냄새로 가득 찼답니다.




Posted by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