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오면 더욱 그리워지는 따뜻한 내 고향.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잊을 수 없는 밤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통한옥으로의 여행은 어떨까요?
강릉 선교장
강원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한 선교장(중요민속문화재 제5호)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고택입니다. 옛날에는 이 집의 문 앞까지 경포호가 찰랑거렸다고 합니다.
당시에 배다리, 즉 선교(船橋)를 놓아 호수를 건너다녔다고 해서 ‘선교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집은 규모가 가장 큰 전통 민가로도 유명합니다. 조선시대 민가로는 최대규모로 지을 수 있는 99칸의 전형적인 양반 주택입니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조선 태종의 둘째아들이자 세종의 형님)의 11대손인 이내번이 1703년에 처음 지었습니다. 그는 원래전주에 살다가 강릉시 저동으로 옮겨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에 집을 지어 이사했습니다.
조선 상류층 주택의 완벽한 짜임새를 보여주는 선교장
이후에도 선교장의 가세가 꾸준히 번창하면서 사랑채인 열화당, 정자인 활래정 등이 중건됐습니다. 오늘날의 선교장은조선 상류층 주택의 완벽한 짜임새를 보여줍니다. 사시사철 언제 찾아가도 운치가있고 기품이 넘치는 고택입니다.
선교장은 입장료를 내고 구경만 하고 돌아서는 집이 아닙니다. 누구나 하룻밤 머물면서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방마다 크기와 형태, 대관료(숙박료)도 다양해서 선택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선교장 경내의 가승음식점 ‘연(蓮)’에서는 300여 년에 걸쳐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갖가지 별미를 한 상 푸짐하게 차려줍니다. 숙박 손님들은 비교적 간편하고 저렴한 저녁식사(초당두부 정식)와 아침밥(황태국 정식)도 주문해 먹을 수 있습니다.
>> 문의 및 예약 033-646-3270(숙박), 033-648-5307(가승음식점)
정읍 송참봉조선동네
110여 년 전에 동학농민군의 함성이 가득했던 전북 정읍군 이평면 청량리에 있습니다. 당시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전봉준 장군의 옛집(사적 제293호)이 지척입니다. 송참봉조선동네는 수백 년의 내력을 이어온 전통마을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송참봉’ 송기중 씨가 수십 억 원의 사재를털어 조성한 전통문화 체험장이자 관광휴양지입니다. 송참봉은 애초부터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조선 말기의 전통가옥을 고스란히 되살린 마을을 조성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100여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거스르는 짧은 시간여행
송참봉조선동네를 둘러보는 것은 짧은 시간여행이나 다름없습니다. 100여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거슬러서 조선시대의 어느 마을에 들어선 듯합니다. 이곳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30여 채 전통가옥에는 감나무집, 달근네, 쌍금이네, 참봉집, 월산집 등의 정감 넘치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는 주막과 전통혼례식장, 우물 등도 있고 마을 한쪽의 커다란 닭장에는 거위, 오리, 닭, 칠면조 등이 모여삽니다. 송참봉조선동네는 조선 말기의 소박한 서민 동네답게 숙식비가 저렴한 편입니다. 1인당 1만 원 선입니다. 예컨대 4인실은 4만 원, 6인실은 6만 원을 받습니다. 대신에 전통초가의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해야 됩니다.
방바닥은 절절 끓어도 방안 공기는 서늘합니다. 실내 화장실도 없습니다. 난방뿐만 아니라 밥도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서 짓습니다. 그러니 밥맛이 좋습니다. 밥값도 놀랍도록 저렴합니다. 대략 15가지 이상의 반찬이 깔리는 참봉밥의 기본상(2인 분)이 1만2000원입니다.
참봉밥만으로도 푸짐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해물부추전이나 손두부, 돼지편육 중 한두 가지를 추가합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른 삶을 늘 소망했던 조선시대 서민들의 꿈이 이곳에서는 완벽한 현실이 됩니다.
>> 문의 및 예약 063-532-0054, www.folkvillage.co.kr
산청 사양정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은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전통마을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선정되기도 한 곳입니다. ‘남사예담촌’으로도 불리는 이 마을에는 밀양박씨, 성주이씨, 진양하씨 등이 조상 대대로 살고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는 사양정사, 이씨고가, 최씨고가, 이사재 등의 고택이 즐비합니다. 그중 상당수가 20세기 초에 지어진 부농 주택입니다. 남사마을 내에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담장(등록문화재 제281호)이 3.2km나 뻗어 있습니다. 예스러운 담장을 따라서 이어지는 골목길의 정취가 일품입니다.
주민들은 고려시대에는 왕비를 배출했고, 고려 말의 유명한 문인 강회백과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 등이 이곳출신이라며 마을 자랑을 아끼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백의종군 길에 오른 이순신 장군이 남사마을 이사재에서 하룻밤묵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습니다.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위엄 넘치는 사양정사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1700년대에 건축된 이씨고가입니다. 하지만 가장 위엄 넘치는 집은 1920년대에 지어졌다는 사양정사입니다. “집주인이 무반(武班) 출신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형이 권위적입니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이 집은 원래 정덕영이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입니다.
가운데 대청 양쪽에 각각 2칸, 1칸 크기의 방이 있습니다. 권위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하룻밤을 머무는 동안에는 오히려 내 집처럼 편안합니다. 밖에 듬직한 보초를 세워두고 하룻밤을 보낸 듯합니다.
사양정사는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민박집입니다. 집 자체의 예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맛있는 밥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옛 선비의 밥상처럼 정갈하고 소박하면서도 깊은 손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밥상을 받으려면 주인아주머니에게 미리 부탁해야 됩니다. 이렇다 할 만한 별미는 하나 없는데도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잘차려진 밥상입니다.
>> 문의 및 예약 055-973-6052
영덕 괴시리 전통마을
경북 영덕 강구항은 영덕대게의 본고장입니다. 대게 살이 실해지는 이맘때쯤이면 영덕대게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줄을 잇습니다. 어항의 새벽은 늘 활기 넘칩니다.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어항의 첫새벽을 여는 어민들의 억척스러운 모습이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강구항에서 축산항, 대진항을 거쳐 대진해변까지 약 28km의 구간에는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이어집니다. 근래 ‘영덕대게로’라 개명됐지만, 여전히 ‘강축해안도로’로 불리는 이 길은 어디서나 창망한 동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굽잇길을 돌아설 때마다 불쑥 나타났다가 총총히 뒷걸음치는 어촌과 포구의 정경도 인상적입니다.
대진해변 삼거리에서는 영덕대게로와 고래불로, 예주목은길이 갈립니다. 그 가운데 예주목은길을 따라서 영해 방면으로 1km쯤 가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로 빼곡한 마을 어귀에 다다릅니다. 이곳이 바로 영덕군 영해면의 괴시리 전통마을입니다.
1260년(고려 원종 1년)에 함창김씨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 뒤로 영해신씨, 신안주씨 등이 정착했습니다. 1630년(조선 인조 8년)에는 영양남씨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성씨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감으로써 오늘날과 같이 영양남씨의 집성촌이 되었습니다.
괴시리는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1328~1396)의 고향입니다. 원래 지명은 근처의 연못 이름을 따서 호지촌(濠池村) 이라 불렸습니다. 오랫동안 중국 원나라에 머무르다 귀국한 이색이 고향 호지촌과 중국 괴시마을이 비슷하다고 해서 괴시(槐市)로 고쳤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민들은 호지마을이라는 지명을 애용합니다.
30여 채의 전통가옥
괴시리에는 목은 이색의 자취가 곳곳에 산재합니다. 마을 안쪽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목은의 옛 집터에는 근래 ‘목은이색기념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마을 부근의 산등성이에는 그가 바다를 굽어보던 관어대도 있습니다. 괴시리에서 멀지 않은 ‘고래불’이라는 해변도 목은이 관어대에 올라 고래들이 튀어 오르며 헤엄치는 광경을 보고 붙인 지명입니다.
현재 괴시리 전통마을에는 3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습니다. 괴시파종택, 물소와고택, 경주댁, 대남댁, 영은고택, 주곡댁 등 을 비롯한 고택들은 서남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동쪽에 솟은 망일봉과 망월봉 자락에 등을 기댄 탓입니다. 그래도 시야가 좁거나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서쪽에 경북 동해안의 3대 평야 중 하나인 영해평야가 형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마을 뒤편의 나직한 언덕에 올라서면, 고택들의 기와지붕 너머로 영해평야의 너른 들녘과 낙동정맥의 우람한 산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마을의 고택들은 대부분 개방돼 있습니다. 집주인들은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어느 누구라도 집 구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괴시리 마을을 거쳐가는 영덕 블루로드의 ‘목은사색길’을 아예 걸어보는 것도 좋을 성싶습니다. 영덕 축산항과 고래불해변 사이의 17.5km 구간을 잇는 이 길은 괴시리 뒤편의 울창한 솔숲과 마을 안쪽의 흙담 길도 두루 거쳐갑니다.
괴시리 다음의 경유지인 대진항부터 고래불해변까지 6.4km 구간에서는 탁 트인 바다와 바닷가 솔숲을 따라 걷습니다. 이 길에서 지나는 대진해변은 소설가 이문열이 쓴 <젊은날의 초상>의 배경이기도 하며, 그 풍경이 퍽 역동적이다. 하얀 포말을 날리며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의 위세가 대단합니다.
반면에 이곳 해변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송천 물길은 잔잔하기 그지없습니다. 작은호수로 변신한 송천 하구에서는 고니, 청둥오리, 고방오리 등의 겨울철새가 한가로이 헤엄칩니다.
참으로 평화롭고 건강한 자연입니다. 뭐든지 간에 살아 있는 것이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살아숨쉬는 자연속에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한옥 여행, 생각만으로도 힐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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