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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도시 꼬마들의 행복한 축제, '남산골도담도담'

도심의 한가운데서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와 노래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10월 9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필동삼거리에서의 일입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축제가 열렸던 것입니다. 이름하여 '제1회 도시 꼬마들의 행복한 축제.' 필동과 인근 남산동, 회현동, 신당동 지역 학부모 모임인 '도시꼬마행복축제운동본부'가 연 이 축제는 2000여 명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다채롭고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먹거리가 어우러진 자리였습니다.


사전 행사로 흙도자기 빚기, 천연 염색, 장수풍뎅이·사슴벌레 만들기, 소방관 체험, 심폐소생술 배우기, 경찰 되어보기 등 갖가지 프로그램이 축제장 곳곳에서 진행됐습니다. 1부 공연으로 어린이들의 난타와 중창, 발레, 리듬체조, 태권도 시범, 장기자랑 등이 펼쳐졌고, 2부 행사로는 크레용팝, JJCC, 빅스타, 지피지기, 리더스, 바바 등 아이돌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열려 관객들의 흥을 한층 돋궜습니다.


아이 놀이방


축제를 기획한 이는 박혜숙(47) 씨. 광고, 카탈로그, 기업 브로슈어, 쇼핑백, 각종 보고서 등을 제작하는 디자인·인쇄업체 (주)보리디앤엠 대표인 박 씨는 필동에 자리한 무료 문화 방과후교실 '남산골도담도담'의 운영자이기도 합니다.


외부에선 흔히 숭례문, 명동, 동대문 주변 아이들이 화려하게 살 것으로 오해합니다. 도심이니 그리 보겠지만, 실상은 정반대예요. 주택가까지 파고든 각종 산업·상업시설로 인해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을 잃고 함께할 친구들도 떠나고 있어요. 이곳에도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도시 꼬마들이 있고, 그들에게 우리 사회와 정부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치는 마음으로 축제를 열었습니다."


■ 도시 꼬마들의 행복한 축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풍성한 시간


가 본 이라면 알겠지만, 서울 중심 남산자락에 위치한 필동과 그 인근 마을은 인쇄소와 부대 산업시설이 빼곡히 들어차 온종일 잉크 냄새가 진동하고 인쇄물을 실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드나드는 번잡한 곳입니다. 이렇다 보니 가정집이 줄고 아이들 숫자도 급감한 데다, 부모들 대다수가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맞벌이로 늦게 퇴근해 돌봄의 손길이 절실한 아이들이 적지 않은 '도심 속 섬'입니다.


아이 놀이방


작은 동네임에도 아이들은 명동의 남산초등학교와 퇴계로의 충무초등학교로 나뉘어 배정받아 어린이집을 함께 다닌 친구가 아니면 서로 모르고 자라기도 합니다. 두 초교 모두 1학년 학생이 학급당 10여 명가량으로 2~3개 반만 있고, 형편이 넉넉지 못해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 어려운 가정도 많습니다. 지역아동센터가 적절한 시스템으로 아이들을 돌봐주면 좋겠지만 그 수가 적어 차상위계층이 60% 이상이어야 설치되는 지역아동센터가 들어서긴 힘든 실정입니다.


남산골도담도담은 이처럼 자칫 도심 속에서 황폐해질 수도 있는 유아와 초등학생들이 유익한 놀이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게 돕는 문화 방과후교실입니다. '도담도담'은 '어린아이가 탈 없이 잘 놀며 자라는 모양'이라는 뜻의 우리말. 동네를 일컫는 '남산골'과 '도담도담'을 합쳐 '남산골도담도담'이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박 씨가 남산골도담도담의 문을 연 때는 2012년 7월. 6년 전 자신의 딸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 옆에 인쇄소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바로 옆 인쇄소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인 게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4~7세 아이들까지 학부모들과 함께 '아이들이 행복할 권리'를 외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박 씨는 22년 전부터 다른 동네에서 해오던 교육 봉사의 대상을 이곳 아이들로 돌리게 됐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교육 장소 협조를 부탁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고, 박 씨는 사비로 임대료를 내며 방과후교실을 운영해왔습니다.


■ 안정적 공간에서 제대로 운영하는 모습 보고파


남산골도담도담은 월·화·수요일엔 오후 6시 30분부터 8시까지 필동 작은도서관에서 야간 공부방을 운영하고, 토요일 낮엔 문화 방과후교실로 그림, 만들기, 만화, 아이클레이, 지점토 공예, 인성 및 리더십 교육, 요리, 염색, 난타 등 내부 교육과 뮤지컬·영화 관람, 파주출판단지·어린이박물관 견학, 어린이대공원·남산 소풍, 벽화 그리기, 도시 꼬마농부 체험 등 외부 체험 교육을 합니다. 현재 남산골도담도담에서 돌보는 아이는 41명. 그에 앞서 30여 명이 이곳을 거쳐갔으니 그간 70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아이 놀이방


하지만 최근 남산골도담도담 운영 환경은 무척 열악해졌습니다. 비록 필동 작은도서관에서 야간 공부방을 유지할 순 있지만, 문화 방과후교실은 외부 지원이 없어 매월 임대료, 식비, 교구 구입비, 강사비, 교재비, 교통비 등에 드는 200만~250만 원가량을 박 씨가 전액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박 씨의 회사마저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아 임대료 내기조차 버겁습니다.


그래서 당장 아이들이 쓰던 미술 재료와 책, 악기류를 보관할 장소조차 구하지 못하는 형편. 도심 어린이에게 이웃 친구들과 안전하게 뛰어놀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주려는 취지에서 개최한 이번 축제의 바자회 수익금 130여 만 원도 체험 학습을 두 번 하고 영어 교재를 사면 바닥날 처지입니다.


다른 고충도 있습니다. 주위에 후원 요청을 했다가 후원금은커녕 심한 모욕을 당하는가 하면, 돈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왜 하냐며 오지랖 넓다는 핀잔도 자주 듣습니다.


박 씨는 "아이들이 점차 밝아지고 또래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걸 지켜보면 한껏 보람을 느끼고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샘솟는다"고 말하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부푼 기대에 걸맞게 내년에 다시 축제를 열게 될지, 남산골도담도담을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습니다.


아이 놀이방


사실 남산골도담도담을 그만 운영하고 싶어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지만, 좀 더 안정적인 공간과 체계적인 시스템 하에서 선생님들이 운영하고 저는 후원자로 남고 싶습니다. 서울시나 중구청에서 문화 방과후교실을 운영할 공간을 내주고 선생님들을 지원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지금처럼 또 제가 하루하루 뛰어야겠죠. 비용 마련을 위해 뛰고, 수업시간에 맞추려 뛰고, 한 가정의 엄마로 아내로도 뛰어야겠지요."


'동그란 수박 속/ 빨간 얼굴에 검은 씨/ 씨가 이라면/ 썩은 이 검은 이/ 빨간 얼굴에 썩은 이/ 절대 어울리지 않을/ 썩은 이와 빨간 얼굴.'


박 씨가 9월 30일 남산골도담도담 아이들이 짓고 그린 동시와 그림을 모아 펴낸 동시집 <썩은 이와 빨간 얼굴>에 나오는 '수박씨'라는 제목의 동시입니다. 수박을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표현한 순수함과 재기발랄함이 더욱 넘쳐날 수 있게 남산골도담도담의 '마지막 수업'이 이뤄지지 않길 바랍니다.


삭막해 보일 수 있는 도심의 거리를 남산골도담도담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수놓는 것처럼. 봉사나 후원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취미가 아닌,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길 바라는 사람들의 노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후원 문의 boricom@naver.com / (주)보리디앤엠 02-2272-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