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가 휘날리고 찬바람이 매서워, 너나없이 까칠해지기 쉬운 계절입니다. 차갑고 건조해진 날씨로 피부의 윤기가 떨어지기 쉬운 탓입니다. 우리 신체 중에서 기온과 습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위는 말 그대로 외피 구실을 하는 피부입니다.
피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체를 둘러싼 보호막이지만 그 자체는 '사체'입니다. 즉 죽은 세포나 진배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죽은 조직을 가꾸기 위해 정성을 들입니다. 피부가 아름다움이나 이미지를 좌우하는 데 큰 몫을 하기 때문입니다.
피부는 흔히 진피와 표피로 나뉘는데, 이른바 죽은 피부는 표피를 말합니다. 표피의 두께는 대략 1~2mm로 얇은 편이지만 추위뿐 아니라 세균 등을 막아내는 데도 없어선 안 될 존재입니다. 물론 표피의 두께는 인종별로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인체 부위별로도 다릅니다. 예컨대 눈꺼풀 부위 피부는 두께가 0.5mm 정도로 가장 얇은 편이고 발바닥 같은 곳은 2mm가 넘을 수도 있습니다.
피부는 언뜻 보면 인체의 다른 조직들, 예를 들어 심장이나 폐 등에 비해 크게 단순한 듯하지만 기능 면에서는 놀라운 구석이 있습니다. 인체에서 거의 유일하게 목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재생을 거듭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오장육부나 뼈, 근육이 피부처럼 쉽게 재생될 수 있다면 인간은 영생을 추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영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같은 '조직 재생'이라는 점에서 부러움을 사는 생명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마뱀이나 도롱뇽은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도 재생이 됩니다.
사람과 달리 도마뱀, 도롱뇽, 불가사리 등의 생체조직이 재생되는 건 이들이 성체 상태에서도 일종의 '만능'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덕분입니다. 물론 사람도 수정 초기 배아 상태에서는 줄기세포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인간은 성체가 되면 줄기세포를 거의 다 잃습니다.
피부 세포의 수명은 평균 48일입니다. 진피에서 만들어진 피부 세포가 표피 쪽으로 밀려나오는 데 약 보름, 이어 표피 쪽에 머무는 기간이 한 달쯤인 것입니다. 목욕탕에서 때로 밀려 나오는 건 이런 과정을 거쳐 죽은 표피들입니다. 혈관과 이어져 있지 않은, 즉 죽은 조직인 표피를 가꾸는 데 핵심은 '보습'입니다. 죽어 있기는 하지만 촉촉하게 물기를 공급하면 좀 더 탄력을 갖게 됩니다. 목욕 후 피부가 왠지 탱탱하고 윤이 나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피부에 물기가 많은 게 꼭 좋은 건 아닙니다. 같은 표피라도 공기와 맞닿는 바깥쪽 부분이 더 건조한데, 이렇듯 건조하면 세균의 번식이 쉽지 않습니다. 피부가 수소이온농도(pH) 5~5.5로 산성인 것 또한 세균 증식을 막는 데 유리합니다. 비누나 화장품을 잘못 써 산성 피부를 중성이나 알칼리성으로 바꿔놓으면 세균의 공격에 취약합니다.
표피만큼 죽은 상태임에도 역설적으로 생명체에 큰 기여를 하는 조직도 드뭅니다. 흔히 겉핥기나 진정성이 결여된 행위 등을 수사할 때 '표피적'이라는 말을 쓰는데, 인체에서 역할만 따진다면 결코 표피적일 수 없는 게 바로 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