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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더램프(주)제공)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가 말하는 방송, 영화에서 만난 1980년 5월의 광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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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의 흥행가도가 꺾일 줄 모르고 계속된다. 개봉 3주 만에 관객 1000만 명을 가볍게 돌파하고 내친김에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인 명량’(1761만여 명)의 기록을 향해 씽씽 달리고 있다.

 

상업적 성공만이 아니다. 내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 부문에 한국 대표작으로 나가는 명예까지 함께 누리게 됐다. 이 영화를 선택한 심사위원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의 특수성뿐 아니라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화 과정을 잘 표현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휴머니즘으로 세계인에게 작품의 의미와 주제를 잘 전달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우리는 물론 세계인들까지도 택시운전사‘19805월의 광주를 기억하게 됐다.

 

격세지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처럼 1980년의 광주는 한쪽에서는 애써 잊고 싶은 기억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었다. 그래서 그날을 이야기하려면 용기가 필요했고, 온갖 오해와 편견을 감내해야 했다.

 

‘19805월의 광주를 생각하면 모두 가슴이 아프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픔의 실체와 원인, 심지어 아픔의 크기조차 광주당사자 스스로에게도 오랫동안 들을 수 없었다. ‘광주는 처음에는 말하기를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몇 편의 소설 말고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줄 그릇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과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고작 몇 번뿐이었다. 그것도 정치적 상황이 도와줘서. 어찌 보면 비겁하고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1980년의 광주는 여전히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남아 있고, 살아 있으며,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이며, 밝혀야 할 간절한 진실이라는 사실을 1000만 명이 넘는 택시운전사관객들이 말해주고 있다. 그날의 광주는 아직도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방송과 영화는 그날의 광주를 언제, 그리고 얼마나 찾았을까? 19876월 민주항쟁으로 얻은 민주주의 불길이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에도 불을 지핀 198923, MBC가 우여곡절 끝에 창사특집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 TV로서는 금기 아닌 금기를 깨고 그날의 광주를 국민에게 알린 첫 시도였다. 여전히 그날의 광주는 민주화운동이 아닌 사태’, ‘항쟁이던 때였다.

 

정부와 방송사, 재야 단체, 외국의 기록과 생생한 자료 화면, 피해자인 광주 시민의 목소리로 그날의 광주를 모든 국민에게 보여준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과 반응은 엄청났다. 앞서 열린 국회 청문회와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방송사와 신문사에 전화가 빗발쳤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그날의 광주의 원인과 과정, 상처는 여전히 그곳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정부의 것들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어찌 그 자료만으로, 한 어머니의 눈물만으로 그날의 광주를 다 말할 수 있었으랴. 당시 이 프로를 제작한 김윤영 PD의 말처럼 광주의 아픔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컸고, 방송은 그것의 절반도 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노래는 단편적이나마 그날의 광주를 국민이 직접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줬고, 누군가 그곳의 진실을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물론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편파적이라며 비난하면서 더 이상 광주를 말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 누군가는 KBS였다. 역시 다큐멘터리였다. 불과 한 달 후인 38일 방송된 광주는 말한다는 주로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드러낸 어머니의 노래에서 한 걸음 더 용기 있게 나아갔다. 당시 상황을 일지 형식으로 엮으면서 자료와 증언의 논리적 제시로 진실에 접근하려 애썼다. 자료를 통해 계엄군의 과잉 진압을 증명했고, 5·18민주화운동이 지역감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도 밝혀냈다. 빙산의 일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국민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려 70.4%의 시청률. 방송 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렇게 민주화 물결 속에서 방송은 광주를 말하고 지나갔다. 그러고는 또 침묵.

 

영화는 더 오래 침묵했다. 광주를 이야기한 소설이 잇따라 나와도 그것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화하기를 꺼렸다. 사전 검열과 가위질이 무서웠고, 보이지 않는 정치적 손에 의한 압력이 흥행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하더라도 1991부활의 노래처럼 곁가지로 비켜나거나, 1996꽃잎처럼 그 참혹한 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한 소녀와 후유증을 겪는 소녀의 비극성에만 집착할 뿐 그날의 광주로 달려가지 못했다.

 

20077월에야 화려한 휴가로 용기를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도 택시운전사처럼 역시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은 택시운전사다. 영화는 그와 그의 동생,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이 겪은 비극과 그날의 광주를 광주의 시각으로 구성했다. 이 영화는 그동안 관객들 역시 광주의 이야기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 증명했다. 곳곳이 거칠고, 과장도 있고, 허구도 있었지만 700만 국민이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그날의 광주와 함께했고, 무엇보다 그날의 광주에서 짓밟힌 휴머니즘에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이번에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복(송강호)이 우리를 광주로 안내했다. 아무런 편견이나 정치색 없는 그와 사실만을 담으려는 외국 기자는 그날의 광주에서 폭도가 아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착한,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이웃들을 만났고, 그들이 이유 없이 무참히 쓰러지는 것을 봤다. 어쩌면 택시운전사는 그들에게, 그리고 그날의 광주에게 우리 모두가 빚을 진 것은 아닌가 하고 묻고 있는지 모른다.

 

이란 다름 아닌 진실이다. 단죄에 앞서 광주는 지금도 진실을 원하고 있다. ‘광주는 말한다,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도 그것을 원했고, 한 걸음이라도 그쪽으로 나아가려 했다. 진실은 두 개일 수 없다. 이념과 정치가 진실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19805월의 광주에는 여전히 두 개의 진실이 존재한다. 더 이상 가짜가 진실 행세를 해선 안 된다. ‘19805월의 광주는 오롯이 역사로 남아야 한다. 벌써 한 세대가 훌쩍 지났다.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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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