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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토는 동북아시아에 있지만 한국은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러운 곳, 열악한 환경에 놓인 곳,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겨루는 곳 어디에서도 한국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삭막한 아프리카 대륙에 공장을 만들고 무더운 동남아시아에서 기업을 일구며, 어려움에 처한 나라가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 돕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땀 흘리는 한국인을 소개합니다. 


자랑스런 한국인



   열정과 패기로 봉사활동·비즈니스·취업,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는 한국인들


자랑스런 한국인_해외봉사


"세계로 가는 기차 타고 가는 기분 좋지만~ 그대 두고 가야하는 이 내 마음 안타까워~ 그러나 이제 떠나가야 하는

길 위에 서서~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록그룹 ‘들국화’가 1985년 발표한 <들국화> 1집에 수록된 '세계로 가는 기차'입니다. 해외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흥얼거려 볼 만큼 즐겁고 경쾌한 노래인데요. 이 노래는 1980년대 들어 일반 국민들의 해외 나들이가 조금씩 활발해질 무렵에 나왔습니다. 이 때만 해도 외국은 막연히 설레는 곳이었습니다. 


014년 현재, 세계로 나가는 한국인은 굉장히 흔하지요. 관광지식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484만여 명이 출국했으며, 출국자 수는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해요. 또한 과거엔 일본이나 미국, 유럽에 해외 진출이 집중되었지만 이제는 자원개발, 신시장 개척 차원에서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선진국들과 해외 투자를 놓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답니다. 


비즈니스뿐만 아닙니다. 세계 오지에서 봉사활동에 나서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는데요. 해외 봉사단 파견 규모는 현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입니다. 한국은 1990년 44명의 한국 청년들을 네팔·스리랑카·인도네시아·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보낸 이후 매년 해외 봉사단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후 2013년까지 정부 주관으로 보낸 해외봉사단원은 65개국 1만980명으로 지난해 1만명을 돌파했으며,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봉사단원은 45개국 1,600여 명 수준입니다. 



   동아프리카 가발 시장 70%점유, 아프리카에 울리는 일자리 희망가


자랑스런 한국인_기업인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산업공단 지역 룽가룽가 거리에는 매일 오전 6시만 되면 긴 줄이 늘어섭니다. "하바리(안녕하세요), 보스!" 차에서 내린 최영철(59) 사나그룹 회장을 알아본 젊은이들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반갑게 손을 흔듭니다. 


최영철 회장이 케냐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은 30년 전인 1984년. 첫 직장인 무역회사 사장이 케냐에서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 왔고, 전 재산 2천만원을 탈탈 털어 구입한 섬유제품을 컨테이너에 실어 나이로비로 보냈답니다. 현지에서 물건은 날개 돋친 듯 팔렸지만 사장은 ‘아직 수익이 나지 않았다’며 투자금은커녕 월급 한푼 주지 않았고, 1년 동안 버티다가 결국 한국행 비행기표와 현금 300달러를 겨우 얻어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는 대신 희망을 봤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무엇을 가져다 팔아도 잘 팔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제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케냐에 가장 필요한 제품은 무엇일까 고심한 끝에 아프리카인의 필수품인 가발을 떠올렸고 수개월에 걸친 시장조사 끝에 1989년 가발공장을 설립하게 됩니다. 어느 하나 간단치 않았지만 각고의 노력끝에 동아프리카 가발 시장의 70퍼센트를 점유하고 20여 년만에 직원 8천여 명을 고용한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기술로 빈곤탈출의 희망을 준 에티오피아 교육봉사


자랑스런 한국인_에티오피아 교육봉사


"흩날리는 흙먼지와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 그 곳은 황량한 사막이었죠."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에티오피아에 대한 김정현(45) 씨의 첫 인상입니다. 김정현 씨는 2006~2009년, 2012~2013년 등 두 차례에 걸쳐 5년간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는데요. 그가 봉사활동을 한 곳은 오르미아주의 주도인 나자렛. 


김정현 씨는 나자렛의 아다마 직업훈련대학(Adama TVET College)에서 기술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그의 전공이 기계 분야였기 때문인데요. 교육 프로그램은 공작기계 및 가공방법, 유지보수 등으로 짜여졌습니다. 하지만 실습장을 보곤 한숨부터 나왔답니다. 


"대학 건물 안과 밖은 온통 먼지로 가득하고, 건물 외벽은 페인트 칠도 하지 않은 상태였죠. 기계 실습장에는 노후화된 러시아산 기계 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선반 4대, 밀링 2대, 평면 연삭기 1대 등이 있었는데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선반 1대와 수평 밀링 1대 정도였죠. 난이도에 따라 다양한 기계 가공 기술을 교육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어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걱정부터앞섰죠.”


실습 장비의 노후화에 이어 김 씨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학원(Institute)이었던 김 씨의 학교가 전문대학(College)으로 승격하면서 몇 개의 과정이 신설됐는데, 이 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교육 실습 장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하 코이카)이었습니다. 코이카의 현장 지원사업(3만 달러 규모)으로 학생과 교사들을 위한 CAD/CAM 실습실(Lab)을 설치한 것인데요. 김정현 씨는 새로운 실습실에서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이들을 보면서 한국이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느꼈다고 해요. 


자랑스런 한국인_교육지원사업


   마을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르완다 새마을 사업 


자랑스런 한국인_르완다 새마을사업


르완다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하 코이카) 해외봉사단의 새마을사업이 시작된 지 5년째. 새마을사업이 전개된 카모니 지역의 4개 마을(키가라마, 기호궤, 무심바, 가샤루)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코이카 봉사단이 르완다에 처음 발을 내디딘 2010년만 해도 이 곳은 조그만 텃밭이 전부인 깡촌이었는데요. 코이카 르완다사무소 김동립(34) 과장은 “처음에는 전통적인 방식에 맞춰 생활했을 뿐 개선을 위한 변화를 생각할 수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소극적인 주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김동립 과장은 “처음에 현지 주민들은 우리가 물자만 전달하고 간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자신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을 목말라했다”고 회고하며, 새마을 의식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매주 ‘새마을위원회’를 열어 마을 사안에 대해 의논하면서, 주민들은 차츰 마음을 열었습니다. 


한편, 벼농사 사업도 현지 주민들과 함께 일궈냈습니다. 르완다는 비가 올 때 물이 범람해 건기 외에는 농사가 불가능한 습지가 대부분입니다. 2011년 기호궤 마을에서 벼농사 사업을 시작한 새마을 리더 봉사단 2기 이가현(23) 단원은 “벼농사 기술교육으로 물 범람 문제도 해결하고 이곳 주민들에게 소득 창출의 기회가 생겼다”며 뿌듯해했습니다. 


김동립 과장은 “마을을 위해 자신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애정을 갖게 된 것 같다”며 “르완다의 새마을사업은 앞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코이카 해외봉사단은 올해부터 2016년까지 새마을운동을 확장한 ‘새마을광역화’ 사업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 르완다의 새마을사업

르완다의 새마을사업은 우리나라 1970년대 농촌계몽 운동인 새마을운동을 빼닮았습니다.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스스로 빈곤을 극복해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르완다 농촌지역을 개발하고 지역주민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한편 르완다에도 전통적으로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우무간다(Umuganda) 운동’이 있는데요. ‘지역공동활동(Community Work)’이라고 불리는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아침에 모여 마을의 공동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전통적 지역공동활동 덕분에 르완다 내 우리의 새마을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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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