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0.5℃ 만 차이나도 인간의 몸은 즉각 감지합니다. 인간 온도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죠. 반면, 개는 인간의 수백수천 배에 달하는 후각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 독수리나 매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식별이 불가능한 5~6km 떨어진 작은 물체들까지 알아봅니다. 사실 인간의 감각은 동물들 가운데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온도 감지능력만큼은 인간도 상당히 예민한 축에 속합니다. 단 0.5℃의 온도 변화도 문자 그대로 몸으로 알아차립니다. 요즘 아침저녁 기온은 8월 초순에 비해 현저하게 낮게 느껴집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렸던 8월 초순 최저기온은 25℃를 넘나들었습니다. 이에 비해 지난 9~15일 한 주간 서울의 최저기온은 대략 22~23℃ 수준이었습니다. 불과 2~3℃ 정도 낮아진 것입니다.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무더웠던 밤과 쾌적한 가을 공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시원한 저녁을 가르는 게 겨우 이 정도의 차이인 셈입니다.
인간이 후각이나 시각에 비해 훨씬 더 예민한 온도 감각을 갖게 된 것은 기온이 생존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적도와 극지방의 환경 차이, 이에 따른 생존 방식은 말 그대로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예민한 온도 감각은 무한대 범위에서 작동되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인간은 100℃ 정도로 뜨거운 물과 120℃로 끓는 물의 온도 차이를 확실하게 구별해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영하 20℃와 영하 30℃ 사이의 차이를 명확하게 감지해내지 못합니다.
인간의 몸에 내장된 온도계라 할 수 있는 ‘온도 감각기관’이 제대로 작동되는 온도 영역은 개인차가 조금 있긴 하지만 대략 5~45℃ 범위입니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설령 차이를 느낀다 해도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예민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온도 감각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는 아직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만 찬 기운과 따뜻한 기운을 느끼는 신경세포가 각각 다른 건 분명합니다. 온도를 느끼는 신경세포는 피부에 분포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열기를 감지하는 신경세포가 표피에 더 가까이 자리한다는 사실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난 추운 건 그런대로 견디겠는데, 더위는 정말 못 참아”라고 불평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온도를 감지하는 ‘열 신경세포’와 ‘냉 신경세포’의 분포를 감안하면 이해할 만한 말입니다. 즉 열 감지 신경세포가 찬 기운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보다 표피에 더 가깝게 분포하기 때문에 열기의 변화를 좀 더 쉽게 느끼는 것입니다.
단백질과 지방 등으로 이뤄진 인체는 본래부터 온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환절기에 감기가 유행하는 것도 인간의 온도 민감성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인간의 주요 감각 가운데 일상적인 정보 처리의 80%가 시각을 통해 이뤄진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온도 감각은 정보 처리량은 시각보다 작을지 몰라도 생존에는 시각이나 후각 못지않은 중차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작은 온도 차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체의 신비가 놀랍지 않나요.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든 환절기에 일교차가 큰 만큼 몸과 실내 환경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여 건강을 챙겨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