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 쫓겨 심리적으로 지칠 때, 한걸음 쉬어 가는 여유를 느끼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장거리 출장이나 외근을 할 때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며 마음의 고요함을 느껴보세요. 칼럼니스트 구승준이 추천하는 '고속버스 심리치료요법',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버스냐, 기차냐? 나는 늘 기차였다. 기차가 빠르고 정확하며 쾌적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사는 곳은 하필 기차역이 멀고 고속버스터미널이 지척이다. 그래서 별수 없이 고속버스를 탔다.
남원까지 공식(?) 소요 시간은 네 시간 반이다. 요금은 우등이 2만 5400원, 일반이 1만 9500원. KTX 요금에만 익숙했던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동 거리에 비해 요금이 획기적으로 싸지 않나. 평일 첫차라 그런지 승객도 없다시피 하다.
쾌적해서 좋긴 하다. 조금 과장해서 차내가 절간이다. 승객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은 데다 단체 승객이 없어서다. 대화 소리도, 휴대폰 벨소리도, 아기 울음소리도, 각종 음식물 냄새도, 심지어 소지품을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없다. 차내는 조용하고 한가로우며, 차창 밖으로는 느긋하게 이어지는 풍경이 마음을 풀어놓는다.
버스가 도심을 빠져나가자 하늘을 향해 치솟았던 빌딩의 높이가 차츰 겸손하게 낮아졌다. 나는 책 몇 권을 꺼내 두서없이 번갈아 읽으며 게으르고 산만한 독서를 했다. 마치 모이를 쪼는 닭처럼 고개를 책 속에 파묻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기를 반복했다.
남쪽으로 달리는 버스는 오전 10시를 넘기며 하루 중 가장 예쁜 햇살을 쏟아냈다. 군데군데 보이는 초록빛이 남쪽으로 갈수록 많아지고 짙어졌다. 오라, 이 길이 봄이 오는 길이구나. 기분 좋은 졸음 같은, 흐뭇한 적요함이 이어졌다.
사실 남원에 간 것은 볼일이 있어서다. 가까이 지내던 어르신이 은퇴 후 지리산 자락으로 낙향하신 뒤 통 뵙지 못했다. 책을 구해달라는 심부름도 있었다. 어르신은 무려 왕복 아홉 시간에 달하는 거리를 와주었다고,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했다. 나 역시 처음엔 꽤나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튿날, 돌아가는 고속버스에 오르며 나도 모르게 이런 인사말이 나왔다. “다음 달에는 순수하게 놀러 오겠습니다. 막상 와보니 그리 힘들지도 않네요.”
기차나 버스를 타고 적당히 먼 목적지로, 느긋하게 창밖을 감상하며 가는 것. 심리치료요법에 이런 것도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 과문한 탓인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 그것에 이름 붙인다면 ‘드라이빙 테라피(driving therapy)’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차창 밖-심리치료’쯤으로 불러야 할까.
이름이야 어쨌든, 나는 참 좋았다.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니 눈으로 좇노라면 마음속에 뒤엉켜 있던 울혈(鬱血)이랄까, 실타래 같은 게 그 흐름을 따라 한없이 풀어졌다. 머리가 가벼워지고 가슴이 시원해졌다.
(사진=구승준│칼럼니스트)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이 가성비 높은 심리요법을 마구 권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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