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벤처기업은 영문으로 홈페이지를 만듭니다. 이메일이나 공문서도 영어 사용이 기본이고요. 내수시장이 작기때문에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창업을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도전정신이 투철한 벤처기업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정부와 대학, 그리고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이 이스라엘을 세계가 주목하는 벤처 강국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명문 테크니온공대의 구직 게시판에는 글로벌 기업의 구인공고가 빽빽하게 붙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삼성·LG·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도 눈에 띄는데요.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스라엘에 진출해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텔아비브의 R&D단지에는 인텔·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IBM·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이 진출해 R&D센터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세계 100대 정보기술(IT)기업의 75퍼센트가 이스라엘에 R&D센터를 두었을 정도예요.
이스라엘의 인구는 약 780만 명. 내수시장에서 큰 성공을 기대하기에는 적은 인구입니다. 주위 국가들과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이다 보니 이웃 나라로 진출하는 전략을 세우기도 어렵죠. 그럼에도 글로벌 기업이 이스라엘에 진출하는 이유는 바로 기술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벤처기업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흡수해 신제품 개발에 사용하기 위해서예요.
국토 전역이 실리콘밸리인 나라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전 국토가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정도로 벤처 창업이 활성화된 나라입니다. 비결은 창조경제 시스템이죠. 이스라엘의 대학은 도전정신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이들을 기업인으로 키워내는 정교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요. 여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과 혁신을 거듭해온 이스라엘 특유의 `후츠파(Chutzpah)` 정신이 있습니다다. 후츠파는 ‘주제넘은 ,당돌한, 놀라운 용기’를 뜻하는 이스라엘 고유어로, 도전을 권장하는 특유의 기업문화를 이끌어냈어요.
KAIST 김희태 산학협력센터장은 3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테크니온공대·와이즈만대와 교류협력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김 센터장은 이스라엘의 창업 시스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교수나 학생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면 곧장 창업을 준비합니다. 대학은 연구소를 제공하고 창업지원센터는 특허 등록부터 법인 설립에 필요한 절차까지 상세히 설명을 해줍니다. 투자자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투자자를 만나 사업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진행됩니다.”
김 센터장은 대학생의 창업을 지원하는 정부 제도도 인상적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0년대 초반 벤처투자법을 정비했습니다. 실패한 사업가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고, 창업자·대학·투자자가 기업 지분을 3분의 1씩 균등하게 나누는 제도도 이때 도입했죠.
“KAIST에서 벤처기업을 설립한 교수의 지분은 0퍼센트입니다. 학교에서 기부 형식으로 3~4퍼센트만 지급하지요. 실패하면 혼자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창업 현실은 이 정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을 오가며 사업을 벌이는 코이스라 박대진(34) 대표는 이스라엘의 문화적 저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박 대표는 히브리대와 텔아비브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이스라엘 전문 컨설팅 기업을 차린 젊은 사업가인데요.
“이스라엘 가족이 모이면 그 중 한두 명은 사업가일 정도로 창업이 활발합니다. 어려서부터 주위에서 창업한 사업가를 보고 자라기에 창업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문화가 정착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대기업에 입사하기보다 창업을 선호합니다. 남의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는 것과 스스로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 중 어느 쪽이 매력이 있는지는 비교할 필요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박 대표도 이스라엘의 창업 시스템에 대해서는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내수시장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창업 초기부터 미국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구상합니다. 미국에서 먹힐 아이템을 개발하고 홈페이지도 아예 영어로 만들죠. 투자자를 찾는 일도 미국에서 합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이미 성공한 선배들과 세계 금융계의 큰손으로 활동 중인 유대인 투자자들이 즐비해요. 따라서 미국에서 창업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선배 기업인과 네트워크도 탄탄하죠.
R&D센터는 반드시 모국에 유치
미국에서 창업하는 이스라엘 기업들의 불문율이 있습니다. R&D센터는 반드시 이스라엘에서 운영하는 것이죠. 기술이 생존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장 공략을 위한 마케팅 활동이나 전략기획은 미국에서 진행합니다. 하지만 기업을 이끌어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연구소는 이스라엘에 있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박 대표는 이스라엘을 ‘생존’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며 창업문화를 설명했습니다. 한국처럼 이스라엘도 천연자원이 거의 없어요. 게다가 주위는 적대적인 국가뿐이죠.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며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벤처 생태계가 융성해진 배경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주도한 창조경제 정책의 효과도 큽니다. 1993년 이스라엘 정부는 민간자본과 함께 요즈마펀드를 만들었어요. 벤처투자를 돕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죠. 지난 10년간 요즈마펀드가 벤처기업에 투자한 자금만 150억 달러에 달할 정도예요.
또한 이스라엘의 군대제도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스라엘은 군대에서도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학부터 전문기술까지 틈틈이 자신이 원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어요.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아예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군대에 가는데 이 과정에서 원하는 부대에 입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들이 가장 입대를 희망하는 곳은 이스라엘 최고 엘리트들이 입대하는 탈피옷(Talpiot) 부대입니다. 역대 이스라엘 총리 대부분이 탈피옷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주요 기업 CEO의 상당수도 이 부대에서 사병생활을 했죠. 부대에서 엘리트 교육을 진행하며 나라를 이끌어갈 리더를 키워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