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구급차에게 양보운전을 한 당신의 5분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초기 출동의 ‘골든 타임(Golden Time)’ 입니다. 골든타임은 화재의 초동 진압과 응급환자의 소생률 향상을 위한 시간으로 사고 및 환자 발생 후 최초 5분을 말합니다. 응급환자의 경우에는 4~6분이 골든타임입니다.
지난 6월 21일 오후, 울산에서 ‘모세의 기적’이 재현됐습니다. 당시 6중 추돌사고가 발생한 울산 어물동 무룡터널은 사고 여파로 터널 입구까지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구급차와 소방차량의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차량들이 서서히 비켜주기 시작하더니 구급차가 터널에 진입하니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차들이 일제히 터널 양쪽 끝으로 붙어 터널 한가운데 길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덕분에 구급차와 소방차는 터널 안 800m 지점에 있던 사고 현장까지 출동 7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승용차 5대와 화물차 1대가 뒤엉킨 사고에서 부상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울산동부소방서 강동지역대 박동혁 소방장은 “터널 화재나 구조에는 긴급한 상황이 많다. 현장까지 빨리 달려가야 하는데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펼쳐지니까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빛나는 시민의식이 빚어낸 ‘울산판 모세의 기적’은 여러 명의 생명을 구한 아름다운 양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급차와 소방차 등 긴급차량에 대한 국민의 양보의식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긴급차량의 현장 도착 평균시간은 8분 18초로 초기 응급상황 대처의 골든타임인 4~6분 이내 도착률은 32.8%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소방관의 64%가 설문조사에서 “일반 차량들이 비켜주지 않는다”고 응답했습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긴급차량 양보 의무를 위반해 과태료를 납부한 경우가 58건에 이릅니다. 도로교통법은 긴급차량에 대한 일반 자동차의 피양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구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소방기본법 역시 소방자동차의 우선 통행을 명시하고 있으며, 소방 출동 및 활동에 방해가 되는 차량 및 물건을 제거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소방자동차의 출동을 방해한 자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실제로 고층 아파트 화재 시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현장 도착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경우 집 안에 갇힌 사람의 연기 질식이나 추락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심정지 환자 등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처치와 병원 이송이 늦어져 사망까지 이르게 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9년 경기 화성 씨랜드 수련원 화재는 불법 장애물이 피해를 키웠습니다. 씨랜드 진입로가 협소하고 비포장 일방통행로(2~3m)였던 데다 일부 도로에 사유지를 주장하는 불법 철조망과 쇠말뚝 등의 장애물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소방차와 구급차량이 사고 현장으로 진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대형 인명 사고로 번졌습니다.
화재 발생 시 5분이 지나면 연소 확산 속도 및 피해 면적이 급격히 증가하고, 인명구조를 위한 구조대원의 옥내 진입이 곤란해집니다. 심정지 및 호흡곤란 환자는 4~6분 이내 응급처치를 받지 못할 경우 뇌손상이 시작됩니다.
늘어나는 교통량과 부족한 시민의식은 긴급차량의 골든타임 내 사고 현장 도착을 막는 장애요인입니다. 게다가 사설 구급차 등의 무분별한 사이렌 울림과 구급차량의 목적 외 사이렌 사용으로 긴급차량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긴급차량 소통을 위한 교통 신호체계 및 시스템 부족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미국의 경우 긴급차량 출동을 위한 긴급차량 전용도로(Fire-Lane) 및 교통 신호 제어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방송 및 수신호로 양보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미국은 ‘5분 대응 이론’에 따른 소방력 배치 시스템을 갖춰 6분 이내 소방차 및 구급차 출동률(출동 지령 후 차고지 탈출시간 1분 포함)이 뉴욕시 100%, 버밍햄시 100%, 클린턴시 82%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처럼 만성적인 교통 정체와 불법주차로 긴급차량 통행 방해가 사회문제화된 일본의 경우 교통 불통지역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24시간 불법주차를 집중 단속합니다. 또 불법주차 차량에 대한 범칙금을 우리나라의 5.3배 이상으로 올려 단속의 실효성을 높였습니다.
최근 국민안전처에서도 향후 166개 소방관서 앞에 출동 전용 신호제어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는 긴급차량 출동 시 도로 신호를 소방관서에서 임의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매년 각 시·도에서는 소방통로 확보를 위한 길 터주기 및 불법 주정차 금지 캠페인을 통한 시민의식 제고에 힘쓰고 있습니다.
국민안전처 119구급과 이민규 소방경은 “긴급차량에 길을 비켜주지 않는 일반 차량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만큼 법 이행을 철저히 해야 하고, 긴급차량 안에 내 가족이 타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등 국민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안전 시스템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양보와 준법정신이 나와 내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철저한 안전 시스템의 확보와 올바른 시민의식을 함양하여 골든타임을 놓쳐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5분 양보운전이 500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도로 상황별 긴급차량 양보운전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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