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은 영국의 존 윌렛이 1976년 <도시 속의 미술>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들어 도시 기획 차원의 공공미술이 활성화됐습니다. 시작은 벽화였습니다. 골목길 담벼락을 캔버스로 바꾼 벽화마을은 2006년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 ‘아트인시티(Art in city)’ 프로젝트가 시행된 이래 국내에 약 1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중에서 공공미술로 새 옷 입은 우리 동네 골목길 7곳을 소개합니다.
서울 종로 상도동 문래동 : 서울의 대표 달동네, 길거리 미술관으로
서울 혜화역과 동대문역 사이에 있는 이화동은 대표적인 달동네였습니다. 그러다 2006년 이후부터 정부와 예술인들이 함께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낙후된 마을 이미지를 독특하고 정겨움이 담긴 골목길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태원 경리단길 주변에도 손님들의 눈길을 끌 목적으로 외벽을 벽화로 채우는 가게까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이외에도 상도동 밤골마을, 문래동 예술촌, 성내동 강풀만화거리, 행운동 고백길 등 약 20곳의 벽화마을이 있습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 피란민 살던 낙후지역, 한국의 마추픽추로
부산 사하구 감천2동에 있는 감천문화마을 또한 산비탈에 노후 주택이 밀집해 있어 부산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이었습니다. 그러던 마을이 지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주민, 예술가, 행정이 폐·공가를 예술창작 공간으로 바꾼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 세계적 건축가들이 참가한 ‘감내풍경 프로젝트’ 등이 이어지면서 CNN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예술적인 마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수원 행궁동 벽화골목 :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바뀐 골목
수원천변을 걷다가 화서문로로 들어서면 행궁동 벽화골목이 나옵니다. 1970~1980년대 가옥과 골목길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회색빛 마을이었는데,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알록달록한 색으로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공공기관의 후원이 아니라 마을 안에서 자발적으로 골목을 꾸며서 특별한 곳. 주민들은 작가와 집 담벼락에 그릴 그림을 상의하기도 하고 직접 붓을 들고 벽화에 칠을 하기도 하면서 마을을 꾸며나갔습니다.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 : 노인만 남은 휑한 마을이 벽화마을로 변신
젊은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어르신이 대부분이던 달동네였습니다. 이런 신세동 성진골이 2014년부터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심재생을 위해 ‘마을공동체’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안동시는 시내 구도심 활성화 대책을 위해 성진골에 공동 텃밭을 만들어 주민들이 직접 경작하게 했습니다. 행정 지원과 함께 벽화마을을 바꿔보고자 하는 지역의 젊은 청년들이 유입되며 벽화마을은 변화의 길로 접어들게 됐습니다. 주말과 휴일에는 100여 명이 넘는 나들이객들이 찾아올 정도입니다.
안양 숨은 벽화길 : 지리적으로 외진 곳, 새로운 명소로
박달로를 차로 달리다 보면 호현삼거리가 나오기 전 공장단지 왼쪽으로 자그마한 길이 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다시 1분 정도 구불구불 올라가면 박달 2동 끝자락에 주민 200여 명 남짓 사는 호현마을이 나옵니다. 나이 지긋한 중년들에게는 추억을, 젊은이들에게는 이색적인 느낌을 줍니다. 아기자기한 벽화와 대비되는 녹슨 철대문이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생활환경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된 ‘생활환경 복지마을 조성사업’은 호현마을을 새로운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대구 방천시장 : 우범지대에서 추억 부르는 길로
대구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인 신천(新川)의 방천 안쪽에 형성된 방천시장. 1970년대 산업화로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가면서 옹벽 옆 좁은 골목길에는 어른들도 밤에 나다니길 꺼릴 만큼 우범지대로 손꼽히는 동네로 전락해갔습니다. 이러한 공간이 2009년 우리나라 대표적 골목문화 관광지로 거듭나 ‘김광석 거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벽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길 중간에 마련된 소규모 야외공연장에서는 깜짝 공연이 열리기도 합니다. 사람 발길이 뜸하던 방천시장이 대구의 명소로 떠오르면서 시민들은 물론 대구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청주 수암골 : 피란민 터전에서 인기 드라마 촬영지로
청주시 상당구 수암골목 1번지. 일명 ‘수암골’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터를 잡고 생활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2007년부터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청주의 다양한 예술단체 회원들과 대학생 등이 ‘추억의 골목여행’을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벽화를 그린 뒤 각종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보통 공공미술이라고 하면 ‘벽화’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수단으로 지역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주민들이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전통 조각이나 회화에서 벗어나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는 조형물부터 초대형 캐릭터, 건물 외벽의 디지털 캔버스, 주민 참여형 작업, 시민 체험형 작품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호응을 이끌 수 있는 방식으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공공미술을 통해 더 아름다우면서 동네만의 특색을 간직한 골목길이 생겨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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