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이 취업을 보장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매일 빠르게 변화하는 취업 시장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객관식 문제와 상대평가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은 이런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학원가 스타 강사와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의 이력을 가진, 현재 교육평론가이자 MBC FM ‘이범의 시선집중’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범의 인터뷰로 그 해법을 들어봅니다.
(사진=이범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에서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효자, 효녀라고 말한다.│ⓒC영상미디어)
청년 계층을 지칭해서 쓴 책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교육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비교적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청년들이 요즘 혼란스럽잖아요.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일하면서 청년들의 취업난, 민생경제 등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 현상을 목도하면서 저 나름의 해석과 분석을 내놓은 셈입니다.
(사진=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나의 대학 사용법) / 11,000원.│ⓒ창비)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청년 취업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용 문제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에요. 노동시간을 줄이면 임금이 감소하겠죠. 따라서 임금 감소를 감수할 여력이 있는 소득 상위층의 노동시간을 감축해 고용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소득 비례 노동시간 감축을 하는 것이죠.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과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주거비와 교육비를 줄여줘야죠. 주거용 부동산은 주택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서 임대주택을 꾸준히 공급하고, 보유세·양도세 인상 등을 병행해야 합니다. 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공·사립대 공동입학제’를 통해 전국적인 공동 입학·공동 학위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노동시장의 가장 큰 변화로 탈학벌, 탈스펙을 지목했는데
강력한 정부 주도 경제에서 자유시장 경제로 바뀌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과거와 달리 사원의 채용 방식이 정기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바뀌는 것도 원인입니다. ‘정기채용→교육·훈련 후 배치’에서 ‘수시채용→즉시 배치’로 바뀌고 있는데, 이제는 뽑을 때 무슨 일을 할지 알고 뽑는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잘하는 사람보다 ‘그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을 뽑는 것이 수시채용의 핵심이며 탈학벌과 탈스펙의 근본 배경입니다.
특히 문과 출신의 취업난이 심각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문과는 전공이외의 비공식적인 부전공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기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바뀌면서 스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으로 교체되고 있으니까요. 먹는 걸 좋아하면 식품산업, 외식산업, 농업, 수산업 등 좀 더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이렇게 적성에 맞는 부전공을 찾아서 경력을 쌓거나 희소성 있는 능력에 도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합니다.
세계 유수 기업의 CEO 절반 이상이 인문학 전공자라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우리나라 인문학의 수난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인문학은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어요.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력을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죠.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순수과학자들이 다양한 사회적 발언도 하고 단체도 만들고 실제 활동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4대강 사업, 휴대폰 전자파 유해성, 라돈 침대 논란 등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아무 발언도 하지 않습니다. 시장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사회적 발언력을 키우는 데 굉장히 애를 써왔기 때문에 확실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학문이 상아탑 온실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힘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청소년도 좋아하는 것을 직업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습니다. 청소년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탐색해야 하는 시기죠. 지금 좋아하는 분야일 수도 있고, 지금은 안 보이는 어떤 다른 것일 수도 있어요. 뭐 하나 고려하면서 이게 직업이 되면 어떨까 하는 건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러워지니까 그런 고려 없이 그냥 해보는 거죠.
고용 불안정으로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여러 직업을 갖게 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평생직장이 없어졌다고 해서 첫 직업이 안 중요한 건 아니에요. 전혀 다른 일을 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의 교집합에서 일을 찾게 됩니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두렵다면 역발상으로 자동화가 안 될 만한 일을 찾아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트럭 기사가 실직하고 회계사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모델과 일자리가 성장할지는 알 수 없거든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산업과 교육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꼽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주도학습능력이라 생각해요. 청년들이 지금까지 경험한 자기주도학습은 대부분 진짜 자기주도(self-directed)학습이 아닌 자기관리(self-managed)학습이었죠. 앞으로 교육의 초점은 창의력 자체보다 는 자기주도학습능력, 특히 본인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에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는 일생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 확률이 높아졌고, 그때마다 본인이 뭘 배우고 실행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이범은 대학교육마저도 주입식 교육으로 진행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C영상미디어)
교육 분야 전문가로서 교육관이 궁금하다. 자녀들을 키우는 데 어떤 기준을 갖고 있나
일단 남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결과를 놓고 화내면 안 된다는 것이죠. 과정의 부실함에 대해 책망할 수는 있겠지만, 결과를 놓고 화내기 시작하면 부모 자식 관계도 망가지고 십중팔구 공부 자체를 싫어하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학원 거부권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가 거부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면 아이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따릅니다. 이 둘은 작지만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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