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영 미국 하버드법대 교수에게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 붙습니다. 첫 동아시아계 종신교수, 첫 아시아 여성교수, 첫 한인교수 등이 그것이죠. 그의 강의는 세계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하버드대에서도 ‘창조적이고 탁월한 강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래서 석 교수는 해외무대를 꿈꾸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롤모델입니다. 석 교수에게 해외 무대를 바라보는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석지영(40·미국명 지니 석) 교수는 지난 1월 18일 서울 숭실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청년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 실패에 좌우되지 말고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고 성취함으로써 두려움을 이겨내라”
“불완전함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완벽한 삶은 없으며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대한민국 청년이 롤모델로 삼는 석 교수는 한국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했어요.
“제 인생을 성공사례로 꼽기보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공감했으면 합니다. 최고 수준에 오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해야 ‘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면서 오랫동안 즐거움을 느낄 수 대상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의 이런 인생철학은 역경 많은 유년기를 극복하면서 형성됐습니다.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에서 오는 외로움을 그는 독서로 달랬어요. 어머니를 따라 매일 찾아간 동네 도서관에서 그는 읽고 싶은 책을 찾아보며 사고의 폭을 넓혔습니다. 미국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언어의 한계도 이때 극복했어요.
글로벌 무대에서 필요한 자질은 혁신적 생각
“책을 읽을 줄 알게 되면서 미국생활에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와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아이들도 같은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 안도했죠. 한국어를 갑작스레 쓰지 못하게 된 환경이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낯선 환경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고 적응력을 키웠습니다.
그는 한때 발레리나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발레 무용수인 이모의 영향을 받아 미국발레학교(The School of American Ballet)에 입학했어요. 학교 측은 석 교수가 발레에 소질을 보이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한 연습에 매진하기를 권했어요. 그러나 공부에 집중하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발레를 포기했습니다. 발레를 그만둔 뒤에는 하루 6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해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발레를 포기하는 상황이 제 인생에서 가장 처음 마주한 낙담의 순간이었어요. 이 경험을 통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일을 찾아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다행히 그 후 피아노에 관심이 생겼고, 성인으로 자라면서 문학과 법을 탐미하게 됐습니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그러나 문학도의 길을 걷는 대신 하버드법대로 진로를 변경하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어요. 전공을 과감하게 바꾼 데 대해 석 교수는 “인생은 길기도 하지만 짧기도 하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문학에 관심은 있었지만 글쓰기가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마음을 잡아 끄는 대상이 나타난다면 방향을 바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한 번 사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즐겁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장애물 있다면 극복할 때까지 연습하라
석 교수가 예술과 문화에 보였던 관심은 법에 융합돼 나타났습니다. 그는 논문 ‘법, 문화, 그리고 패션의 경제학’을 통해 패션디자인을 위한 새로운 저작권법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했어요.
<어릴 적 발레를 배운 석지영 교수의 예술적 감성은 법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에서 출간한 <법의 재발견(At home in the law)>은 2010년 미국 법·사회협회에서 ‘올해 최고의 법률서적’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는 이 책으로 미국에서 뛰어난 법률서적에 수여하는 허버트 제이콥 상을 수상했죠. 그리고 하버드법대에 ‘공연예술과 법’이라는 새로운 강의를 탄생시켰습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필요한 자질을 꼽자면 혁신적 생각입니다. 주어진 구조와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창조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동양인은 위계질서와 훈육을 중시하기 때문에 연장자가 말하는 대로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를 이끌 한국인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뛰어넘어 독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봅니다.
석 교수의 하버드대 종신교수 임명은 미국 한인사회와 한국에서 화제를 낳았어요. 2011년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국내에서 자서전을 발간했습니다. 석 교수는 글로벌 무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나가 놀아라”라고 강조합니다.
“종신교수에 임명된 이후 수많은 대한민국 청년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주로 제 삶과 경험에 관한 질문들이었죠. 한국 청년들은 이미 높은 성취 능력을 지녔습니다. 한국인은 모든 분야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기에 탁월한 수준의 성취를 이뤄 냅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발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제 인생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저를 따라 하기보다 인생을 즐기고 성취하세요.
석 교수는 미국에서 자란 자신과 글로벌 무대로 나가려는 한국청년들의 조건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해외 무대에 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어요.
“글로벌 무대에 선다는 것은 다른 문화와 관습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교류하는 것을 뜻합니다. 편안한 장소에서 벗어나 장애물이 가득한 불편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극복할 때까지 연습하세요. 위험을 감수하고 언제든지 새로운 기회에 도전할 준비를 하십시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을 준비가 돼있어야 합니다.
교수의 입장에서, 인생의 선배로서 석 교수는 ‘즐거운 배움’을 깨우칠 것을 조언했습니다.
“공부는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얻는 수단이 아닙니다. 공부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자 과정입니다. 내면을 살펴보고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찾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공부는 아주 개인적인 것이며 재미있죠.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공부하는 희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파묻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지식을 익히는 데 그치지 말고 앞으로 변화할 세상과 그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배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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