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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쿡방 열풍! '셰프 전성시대' 요리 프로그램이 뜨는 이유

이제는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식칼과 국자를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 낯설지 않습니다. 이른바 '셰프 전성시대'입니다. 이연복, 백종원, 최현석 셰프(고급 식당 주방장) 등은 이미 유명 연예인급으로 잘 알려졌고, 이들의 요리 과정을 담는 방송 프로그램 '쿡방'은 현재 JTBC '냉장고를 부탁해', tvN '집밥 백선생'과 '수요미식회', Olive '한식대첩 3', SBS플러스 '강호대결 중화대반점' 등 지상파와 케이블을 포함해 14개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쿡방 열풍


여기에 쿡방 요소를 가미한 예능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tvN '삼시세끼', KBS2 '해피투게더', SBS '정글의 법칙'까지 포함하면, 지금 방송은 온전히 요리에 파묻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신기한 현상이다 보니 미국 워싱턴포스트까지 한국을 찾아 한국의 요리 광풍을 묘사해가기도 했습니다.


셰프 전성시대의 원인과 본질은 무엇일까요. 먼저 대한민국 현대인의 생활양식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미 1980년대부터 '집밥'의 비중은 크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 베이커리 체인 홍보 문구부터가 '아침 식사는 빵으로'였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신세대 가정의 주류 형태가 되고 있었고, 그만큼 집밥을 사수하려는 노력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외식 빈도는 급증했고 맛집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습니다. 어차피 밖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면 좀 더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게 맛집에 대한 애착과 정보는 확장돼갔고, 마침내 1990년대 중반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맛집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정보가 됐습니다. 당연히 그토록 중요해진 외식을 책임져주는 셰프들의 사회적 지위도 향상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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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교과서적 해석만으론 지금의 셰프 전성시대, 아니 '요리 광풍'을 제대로 설명해주진 못합니다. 어느 나라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외식산업의 발전과 셰프들의 지위 향상이 나타났지만, 한국처럼 요리 열풍이 극심하게 일어난 문화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 대체 한국의 이상 열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셰프 전성시대가 진행되는 이유, 압축적으로 변모한 외식 문화에서 찾아야


먼저 한국 사회의 특수성부터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압축 성장을 해온 나라입니다. 비단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같은 궤도를 그렸습니다. 이는 셰프 전성시대의 바탕이 되는 외식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이 희미할 수 있지만 한국은 1970년대 통일벼 신화를 이룩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보릿고개'가 존재한 나라입니다.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과 잡곡을 혼합해서 먹으라고 권하는 정책이 1980년대 초·중반까지 진행됐을 정도입니다. 식문화가 이처럼 팍팍하다 보니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의 국내 상륙도 크게 뒤처졌습니다.


패스트푸드점으로는 버거킹이 1982년, KFC가 1984년, 피자헛이 1985년, 맥도널드는 1988년이 돼서야 국내에 점포를 열었고, 패밀리 레스토랑은 그보다도 늦었습니다. T.G.I.프라이데이스가 1992년, 데니스가 1994년, 베니건스가 1995년,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가 1997년에야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쿡방 열풍


아주 늦은 출발입니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서 보면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보릿고개를 걱정했던 나라가 그 짧은 시간 내 어마어마한 적응력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소화해내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셰프 전성시대까지 또 10여 년밖에 안 걸렸습니다. 이처럼 다른 나라들은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됐던 외식 문화의 면면을 불과 30~40년 만에 따라잡다 보니, 막힌 물꼬가 터져 나왔을 때처럼 그에 따른 반향도 유례없이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쿡방이 사랑받는 이유, 육아 프로그램 인기 비결과 똑같아


한편 또 다른 측면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지금이 셰프 전성시대 또는 요리 광풍 상황이라 하더라도, 외신까지 주목할 정도의 이상기후가 온전히 대중의 반향 때문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선 좀 더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일단 쿡방적 요소가 가미된 여타 예능 프로그램들, '삼시세끼', '해피투게더', '정글의 법칙' 심지어 '1박2일'을 돌아볼까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요리하는 사람이 모두 남자라는 점입니다. 이는 당연히 본격 쿡방들인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결국 '남자가 하는 요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저 쿡방들의 방향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새로운 예능 트렌드로 각광을 받은 육아 프로그램들, 즉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 어디 가' 등의 성공 비결을 '요리'라는 지점에서 풀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정생활에서 기존에는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일들을 남성의 손에 맡겨 보여주는 형식, 즉 가사생활에 지친 여성 시청자 층을 상대로 한 일종의 '판타지'로서 인기를 끌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마침 워싱턴포스트도 같은 지점을 지적했습니다. 신문은 '한국 요리 프로그램의 새 주인공 : 남자'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성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된 유교 사회에서 '요리하는 남자들'이 부각되는 것은 기존의 관습을 깨고 나온 '새로운 현상'"이라며 "시청자들은 스타일리시한 남성들이 요리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지만, 현실의 부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쿡방은 여성 시청자 층을 위한 여성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설명입니다.


쿡방 열풍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쿡방 열풍은 요리와 셰프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방송 프로그램 콘셉트로서 각광받아 일어난 현상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셰프 전성시대의 광풍은 곧 상당 부분 사그라들 것입니다. 실제로도 시청률은 점차 떨어지고 화제성 또한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에서 우리가 '먹는 것', 특히 '외식거리'에 집착하고 애착을 느끼는 새로운 문화 지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명백한 사실이고, 이는 변하지 않습니다. '경제 불황기일수록 더 알기 쉽고 본능적인 요소들에 끌리게 된다'는 대중심리 분석 역시 다시금 수긍하게 됩니다. 쿡방 광풍의 바탕이 된 사회·문화 현상만큼은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셰프 전성시대로 보이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 잠잠해지더라도 이는 미풍으로 남아 문화 환경을 대변하는 지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