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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는 다문화가족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도약하게 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서로 같음을 찾기보다 서로 다름을 찾아내려 노력할 때, 그리고 그 다름에서 불편함이 아닌 부러움을 느낄 때 비로소 다문화는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살색’ 크레파스에 대한 추억이 있을 거예요. 지금은 살구색이라고 불리는 그 색상은 늘 제일 먼저 닳아 나머지 크레파스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주범이었죠. 인물 표현이 많은 초등학생들은 모든 인물의 피부색을 전부 ‘살색’으로 동일하게 칠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피부색이나 짝꿍의 피부색도 ‘살색’이라는 그 색상과 달랐어요. 왜 그때는 모든 사람의 피부색을 한 가지 색으로 모르겠어요. 


이 살색 크레파스는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특정 색을 살색이라고 명명한 것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개정할 것을 권고한다”고 판결한 이후 사라졌습니다. 그럼 살색이 사라진 지금 아이들의 크레파스는 고르게 닳을까요? 혹시 아이들이 여전히 모든 사람의 얼굴을 살구색 크레파스로 칠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사실 진정한 평등은 살구색 일색인 사람들만 등장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흰색·노란색·검은색 크레파스를 고르게 사용해야 그려지는 사람들이 어울린 그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미래의 국가경쟁력은 창의성이 좌우


인물그림에 크레파스의 다양한 색을 사용하게 하려면 더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통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외모, 다른 언어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마련인데요. 거대한 조직 내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보호받는 구성원일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앞세웁니다. 그래서 나와 이어질 수 있는 학연·지연 등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하죠. 물론 지난 날의 한국사회는 전체의 일원으로서 공통의 목표를 향해 통일된 지침으로 움직일 때 더 효율적 성장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성원의 이런 집단적 동류의식이 우리 사회의 성장을 이끄는 강력한 동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런 목표와 지향을 국가정책으로 의도적으로 내세우기도 했죠.



그러나 미래에도 그럴까요? 미래사회는 무엇보다 창의성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독창적 디자인, 고객의 잠재된 욕구까지 끌어낼 수 있는 마케팅, 대중이 아닌 소수를 위한 다양한 제품 등은 모두 창의성의 소산이죠.


사회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한다는 시장은 이미 획일화한 산업의 소멸을 선언한 지 오래입니다. 보수적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정부의 정책조차 모든 국민이 원하는 보편적 정책 대신 각각의 수요에 기반을 둔 맞춤형 정책으로 전환이 되고 있죠. 이런 창의적 사회에서 획일화한 사고방식은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획일화한 조건 아래 같음을 지향하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던 한국사회는 어떻게 미래에 대비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다문화에 있습니다. 가장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라고 여겨졌던 가족 내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는 다문화가족이 우리 사회의 한 단계 도약을 이뤄낼 수 있는 열쇠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까이에서 내 삶과 연관된 사람들을 통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건강하고 가치 있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같음을 찾기보다 서로 다름을 찾아내려고 노력할 때, 그리고 그 다름에서 불편함이 아닌 부러움을 느낄 때 비로소 다문화는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문화가족 자녀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이 다름을 볼 수 있을 때 아이들의 크레파스는 모든 색상이 고르게 닳을 것입니다.



Posted by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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