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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우리말만큼 섬세한 언어는 없다! 순 우리말 시인 김두환

"조선 할머니 물레노래 참 그윽하고 웅숭깊어 … 질깃질깃 가랑가랑 사리사리 살줄친다…"


김두환 시인의 시 '수국꽃은 그렇게도' 의 한 구절입니다. 이처럼 다채롭고 아름다운 언어가 또 있을까요? 짧은 시 한편에서도 느껴지는 생동감은 한글과 우리말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 주는것 같습니다. 올해로 10번째 시집을 내며 1000편이 넘는 시를 창작해 온 시인 김두환 씨는 이렇게 순 우리말로만 된 시를 짓는 시인입니다. 시와는 무관한 약학대학을 졸업해 약사로 36년 간 일했던 그가 어떻게 시에 푹 빠지게 되었을까요? 김두환 시인이 들려주는 시와 순 우리말, 그리고 우리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김두환 시인


한글날을 며칠 앞둔 10월 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두환 시인은 "매일 시를 쓰고 알맞은 시어를 선택하려 공부를 한다"며 "공부할수록 순우리말의 무한한 세계에 감탄하면서 즐거워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서재 한쪽에는 손때가 완연히 묻은 두꺼운 국어대사전이 놓여 있었습니다. 벌써 수십 차례 보고 또 본 듯한 사전과 언제라도 시를 쓸 수 있도록 원고지가 준비되어 있는 책상은 고령임에도 지치지 않는 김두환 씨의 문인정신을 엿보게 해주었습니다.

김 시인은 1987년 등단해 제 2회 영랑문학상 본상, 제 10회 허균문학상 본상, 제 2회 한국신문학 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주로 서정시를 썼는데요. 올 7월 10번째 시집 <어디쯤 가고 있는가>를 출간하는 등 총 10권의 시집을 내고 그 사이 책으로 소개된 시만 1, 513편이나 된답니다.

   약학을 전공하던 학생이 순우리말의 매력을 깨닫고 시인이 되기까지

원래 그의 전공은 직업과는 무관한 약사였습니다. 성균관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36년 동안 약사로 일했던 정통파 약학인인 김 시인은 "대학 3학년 때 교내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군요. 상도 몇 번 받고 자신감이 붙다보니 어느덧 시를 많이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으로 족적을 남긴 고(故) 박재삼 시인이 김 시인의 시를 읽어보고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약업신문>에 고정으로 시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약사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시를 쓰고 순우리말을 익혔는데요. 그러는 동안 한국어가 얼마나 섬세한 언어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말이 참 섬세해요. 예를 들어 '아름답다'는 영어로 'Beautiflul'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이 되지만 우리말로는 '아리땁다', '곱다'처럼 저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 나뉘거든요."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고유어들을 살려내는 김두환 시인의 작품들

'눈(雪)'만 해도 우리말로는 '함박눈', '진눈깨비', '가루눈', '도둑눈', '소나기눈', '싸라기눈'등 10가지가 넘는 표현이 존재합니다. 단 하나의 적합한 시어를 고르기 위해서 어떤 때는 꼬박 몇 달을 고민했을 만큼 우리말은 다채로웠다고 말하는 김 시인. 그는 "뭘 만들고 손으로 작업하는 일에 능하며 다정다감한 특유의 민족성이 언어에도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곧 여든을 바라보는 노련한 시인에게도 우리말은 나날이 새로운 숙제를 안겨줍니다.

충북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던 임보 시인은 김 시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사라져가는 우리 아름다운 고유어들을 캐내서 새 옷을 입혀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한다. 우리말에 대한 사랑과 탐구정신이 언어학자들의 수준을 넘어선 느낌이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 언젠가는 '김두환 시어사전'이라도 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김 시인은 "나도 아직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요즘도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11번째 시집을 준비 중입니다. 이번에도 독자들에게 순우리말을 최대한 많이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김 시인은 "순우리말은 나라와 겨레의 정신을 지키는 근간"이라며 "외국어나 외래어 대신 순우리말을 더 많이 쓰려는 노력이 각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