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아트'란 길바닥에 붙어 있는 껌딱지를 도화지삼아 그림을 그리는 공공미술을 말합니다. 외국에서 종종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한 여고생이 교정 내 길에 붙은 껌딱지를 멋진 작품으로 만들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충북 보은고등학교 2학년 박송이(17)양의 이야기입니다.
송이는 지난 7월 중순부터 교정 곳곳을 누비며 지저분한 껌딱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두 달 여간 박 양의 손놀림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변한 껌딱지는 100여 점이 넘는답니다. 이 작품들로 보은고는 교문에서부터 본관까지 가는 회색 아스팔트길에 아기자기함이 더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친구 얼굴을 그리고 별명을 적어 넣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학교 모습, 지역 특산물인 보은대추, 아이스크림, 수박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려봤어요." '껌 아트'에 푹 빠진 박 양은 요즘 가을의 정취를 담은 낙엽과 책상, 옷가지 등 다양한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리는 아티스트로 변했습니다.
진로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시작하게 된 껌 아트
송이가 미술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은 중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집을 리모델링하게 됐는데 그때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보고 반했어요. 미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머니를 졸라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미술이 너무 재미있어 이듬해 부터는 미술 관련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 했습니다. 공간디자이너 활동을 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산업디자인을 가르치는 게 그의 꿈입니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하게엔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학교에는 전문 미술선생님이 없었고 보은고에 입학한 후 가입한 미술동아리 역시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려는 학생이 많지 않은 데다 그나마 네댓 명의 회원들도 호기심이나 취미로 하는 이들이 전부였습니다. 오래 다닌 미술학원도 서울로 이사를 가 별도로 지인을 통해 미술공부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미술에 대한 열정과는 달리 이처럼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웠던 송이는 지난 7월 초 최현주 진로상담 교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최 교사는 유학시절 봤던 미국의 '껌 아트'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박 양에게 도전해 볼 것을 권했죠.
"처음 껌 아트에 대해 들었을 땐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허락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재료를 사주시며 꼭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해서 꾸준히 하다보니 기술도 생기고 재미도 붙었어요."
차가웠던 주위의 시선들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응원으로 탈바꿈
물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처음엔 무엇보다 주위의 시선이 신경쓰였고 고무장판을 깔고 땅에 엎드려 50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껌 딱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여고생 입장에선 쑥스러울 수 밖에 없었죠. 자신의 모습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선은 익숙해졌고 송이가 하는 일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작업할 땐 우산을 받쳐주고 음료수를 건네 주는 친구, 제자를 위해 방석을 만들어주는 교사들도 생겼습니다.
송이는 "처음엔 학교에 싫어하는 분들도 있고 오래 못 갈 것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몇 달째 꾸준히 하면서 조금씩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시골이라 웬만한 친구들은 다 아는 사이고 서로의 꿈도 잘 안다"며 "혹시 내 작품을 보고 실망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들 귀엽고 아기자기하다고 말해줘 점점 자신감도 붙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부모님도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그림을 그리려고 아침 일찍 나가는 딸을 보며 건강을 걱정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등교해 틈틈히 작업해 완성되는 교정의 껌 아트들
송이는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껌 아트 작업을 합니다. 너무 일찍 시작하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너무 늦으면 8시 30분 부터 시작하는 수업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죠.
다행히도(?) 송이가 그림을 그릴 껌딱지는 교내에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송이는 "날씨가 더 추워지면 당분간은 작업을 못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땅이 얼면 그림을 그리기 어렵고 아크릴 물감이 잘 마르지 않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미술활동 자체를 멈추는 것은 아니랍니다.
송이는 학교 문예부 회장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내년 축제에서 쓸 소품들을 직접 만들 생각입니다. 회원이 많지 않지만 미술동아리 총책임자가 되면서 전시회 등의 활동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물론 날씨가 괜찮아지면 껌 아트도 다시 시작할 거예요. 사실 걱정되요. 미대에 진학하려면 공부도 해야 하는데 미술활동이랑 병행하는 게 버겁거든요. 하지만 제가 즐기는 지금 이 활동이 꿈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위의 응원대로 끝까지 해볼 거예요."
꿈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남들은 미처 해보지 못한 새로운 예술활동을 시도한 박송이 양, 정말 멋지지 않나요? 더불어 입시에 지친 친구들에게도 한층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학교의 풍경 역시나 송이 양 덕분에 생기있어 지는 것 같네요. 대학에 가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송이 양이 더더욱 예술 활동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위클리공감에서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