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 햇살에 화려한 꽃이 움트고 있습니다. 꽃샘추위를 이겨내 피어나는 동백과 매화를 시작으로 벚꽃이 필 즈음에는 전국이 봄기운으로 들썩입니다. 올봄에는 분주한 일상을 뒤로하고 꽃이 만발하는 백제고도 공주로의 국내여행을 떠나볼까요. 3월 고혹적인 매력을 품은 공주의 봄날의 풍경을 만나러 가봅시다.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주는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새삼 그 놀라운 역사의 가치를 실감하게 됐죠. 특히 공주의 계룡산에는 유명한 고찰이 많습니다. 우선 '춘(春) 마곡, 추(秋) 갑사'라 해서 봄날에는 마곡사의 신록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하지만 신록은 봄의 시작보다 완성인 오뉴월에 가깝습니다. 더불어 계룡산의 봄꽃은 마곡사뿐 아니라 서남쪽 신원사도 빠지지 않습니다.
▩ 단아한 자태의 봄꽃을 만나다, 계룡산 서남쪽 신원사
신원사는 마곡사의 말사입니다. 계룡산의 4대 사찰 가운데 남사(南寺)에 해당합니다.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이 창건했고 통일신라 말 도선이 중창했습니다. 1500년 고찰은 긴 역사를 앞세워 사람을 억누르지 않습니다.
봄날의 벚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천왕문에 이르기까지는 무심한 시골길입니다. 정갈한 부도탑을 지나 소담한 계곡과 세심교를 건너, 그저 한가한 걸음으로 5분가량 마음을 비워내며 걷는 여로입니다. 달뜬 봄기운을 지그시 눌러 마중합니다.
신원사의 봄은 사천왕문에 이르러 그제야 숨겨둔 꽃가지를 드러냅니다. 그다음부터는 융숭한 대접이죠. 길가로 도열한 벚꽃은 대웅전 마당까지 한껏 부풀었습니다. 느릿하게 누려 만끽할 만합니다. 절정은 대웅전 마당입니다. 북쪽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입니다. 코끝을 세운 처마가 멋스럽죠. 마당 중앙에는 지난 1989년에 세운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변으로 잔디를 깔고 디딤돌을 놓아 곱단하게 단장했습니다. 마당 입구 계단에는 높다란 두 그루의 벚나무가 수문장처럼 서서 반깁니다. 양쪽에서 꽃자루를 펼치니 아치를 이룹니다. 그 너머로 오층석탑과 대웅전의 처마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안깁니다. 겨울을 녹이는 봄의 온기처럼 온화하고 화사한 풍경입니다.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음미하거나 여운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도 좋습니다.
그런 다음 대웅전 마당을 오가며 방향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해도 늦지 않습니다. 범종각과 벚꽃의 조화, 영원전의 긴 처마는 빼어난 경치입니다. 독성각에서는 석탑과 석등 사이로 벽수선원까지 이어지는 벚꽃의 산책로도 일품입니다. 경내는 아담하고 소박하므로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넘쳐나지 않으므로 여유로우나 한가하므로 기꺼운 봄날을 즐길 수 있습니다. 봄날의 신원사를 찾게 만드는 기묘한 힘입니다.
대웅전 마당의 벚꽃을 즐긴 후에는 동쪽 중악단으로 이동합니다. 중악단은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으로 신령의 계룡산을 집약합니다. 신원사(新元寺)의 옛 이름이 신원사(神院寺)였던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첫 제사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올렸습니다. 효종 2년(1651)부터 중단했으나 고종 16년(1879)에 부활했습니다. 묘향산의 상악단, 지리산의 하악단은 사라지고 현재는 계룡산의 중악단이 유일한 유적입니다. 건물은 단아하나 왕실에서 지어 위엄이 넘치죠. 지붕의 잡상이 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중앙단 지척의 신원사오층석탑도 눈여길 요소입니다. 4층의 탑신만 남았으나 주변은 금당지가 있던 원래의 신원사 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신원사에서 한 걸음 떨어져 계룡산 자락의 산세를 품기에 알맞습니다. 신원사 주변은 산신들의 꽃놀이터인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 옛 백제의 풍류가 흐르는, 세계문화유산 공산성
신원사와 중악단을 돌아본 후에는 가까이 동학사나 갑사를 들러도 좋습니다. 동학사는 신원사와 더불어 계룡산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입니다. 신원사가 고즈넉한 정취로 발길을 끈다면 동학사는 화려한 벚꽃의 향연으로 매혹합니다. 가을 갑사라지만 오색단풍 또한 봄날의 초록이 빚은 결과입니다. 갑사 가는 길 역시 봄날의 여행 코스로 손색이 없습니다.
백제 유적을 연계한 봄꽃 여행도 가능합니다. 공주 시내에는 공산성이 있습니다. 해발 110m의 능선 위에 지은 2660m의 산성입니다. 백제 문주왕이 웅진(공주)으로 천도하며 조성했고, 성왕 16년까지 5대 64년 동안 백제 왕국의 중심이었습니다. 봄맞이를 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세계문화유산 여행지입니다.
공산성 일주는 보통 서문의 금서루를 출발지로 삼습니다. 공주 시가지와 금강을 바라보며 한 시간 남짓 걸으면 봄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쌍수정 주변은 공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봄맞이 명소입니다. 공산성은 고려시대의 이름으로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조선시대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습니다.
쌍수정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던 장소입니다. 인조가 벼슬을 내린 느티나무 두 그루(雙樹)가 있어 이름 붙여 졌습니다. 영조 때 관찰사 이수항이 지었고 몇 차례 보수하며 지켜온 장소입니다.
쌍수정 아래는 옛 백제 왕궁지로 추정하는 너른 터와 인공 연못의 흔적이 시대를 넘나듭니다. 벚꽃은 그 가장자리에 무리 지어 탐스럽게 피어 있습니다. 꽃그늘에는 여러 개 긴 의자가 놓여 있어 잠깐 머물러 쉬면 봄날의 생기가 꽃바람을 빌려 몸과 마음 곳곳에 스며듭니다. 왕궁지의 너른 터 위를 뛰노는 아이들의 몸짓 또한 한가롭기 그지없습니다. 신원사가 산신들의 봄이 어렸다면 공산성에는 옛 백제왕의 풍류가 흐르는 듯합니다.
백제의 깊은 역사와 봄이 어우러진 공주 여행. 꽃피는 춘 삼사월, 계룡산으로 소중한 사람과 봄꽃을 맞이하는 국내여행을 떠나봅시다. 계룡산 주변의 공주한옥마을과 무령왕릉 등 공주의 아름다운 유적과 축제를 즐기며 과거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