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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걸친 독립운동 가문 오희옥 지사  

“70여 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도 저의 선택은 독립운동입니다”


70여 년 전 어둠이 가득한 중국 류저우(柳州)의 한 시골 마을. 

한 소녀가 조심스럽지만 잰걸음을 내딛는다. 일본인 눈을 피해 독립군에게 밀서를 전달하려는 움직임이다. 누가 시킨 것도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다. 13세의 어린 소녀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험난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덧 90세를 넘긴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91) 지사가 치열했던 지난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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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희옥 지사, c영상미디어 제공)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모두 292명


이들 중 생존자는 오희옥·민영주·유순희 지사 세 명, 아직 활동하는 이는 오 지사 단 한 명뿐입니다. 희미해져가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그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희옥 지사에게 독립운동은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가족사입니다. 


오 지사 가문은 3대에 걸친 독립운동 집안인데요. 중국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펼친 오인수 의병장, 대한독립군단 중대장과 광복군 장군으로 활약한 오광선 장군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입니다. 두 살 터울 언니 오희영 지사와 형부도 독립군으로 활동했으며 어머니 정현숙 지사는 독립군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시작했다”면서 독립운동을 하게 된 계기를 가볍게 설명하는 듯했지만 목적의식은 분명했습니다. 


오희옥 지사는 1939년 4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했습니다. 대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문화 활동이 주요 항일 운동이었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극장에서 연극, 노래를 하며 일본의 악행을 알리는 데 주력했어요. 일본군 관련 정보를 수집하거나 일본군 내 한국인 병사를 탈출시키는 일을 돕기도 했죠. 10세를 갓 넘긴 나이에 무서운 게 사실이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오 지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살고 있는 공간의 벽면 곳곳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훈복지타운 내 10평 남짓한 그곳에는 여러 개의 소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공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문서와 무궁화도 붙어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독립운동 현장에 있는 듯했습니다. 





■정부가 유공자 발굴에 적극 나서야

오희옥 지사는 손가락을 잘라 흰 헝겊에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작성했던 남자현 지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지만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것입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유공자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는 게 오 지사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1946년에 서울로 왔음에도 약 44년이 지나서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만주에서 날마다 열두 가마 넘게 밥을 지어대며 독립군 활동을 도왔던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후에야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우리 식구 모두 유공자로 인정받으면 주변에서 욕한다’며 어머니와 저를 등록하지 않았어요. 다소 고지식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인정 시기가 늦어지기도 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영향도 있죠. 독립운동 공적을 입증하려면 관련 자료가 필요한데 여성 활동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게 과거 사회적 분위기였어요. 그 부분을 정부가 헤아렸어야 해요.



오희옥 지사가 독립운동을 할 무렵 아버지는 곁에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백범 김구 선생의 명에 따라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후에도 만주에서 독립군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오 지사의 언니도 최전방 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한 탓에 그가 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오 지사는 물을 가득 채운 큰 항아리를 막대기 하나에 짊어진 채 집까지 서너 번을 오가며 식수를 보충했고, 배급 쌀로 간신히 허기를 채웠습니다. 고단했던 삶을 떠올리던 그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에 매진하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하면서 가난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오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독립유공자의 3대까지 예우하겠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이전 정부가 외면했던 부분을 챙기는 데 대한 고마운 마음도 드러냈습니다. 



국회의원 수당에 준하는 지원금을 지급하는 선진국도 있는 걸로 알아요.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연금은 굉장히 낮은 수준이죠. 이런 사정을 문재인 대통령이 알아준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더라고요. 몇 안 되지만 연락하고 지내는 유공자들도 모두 기뻐했어요.



오 지사는 이번 광복절 경축식에서 무대에 올라 애국가를 선창했습니다. 무반주에 노래한 그의 애국가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달랐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곡조에 애국가 1절을 입힌 곡이었습니다. 안익태 선생이 지금의 애국가를 완성하기 전까지 독립군들이 불렀던 곡조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과거를 알리며 애국지사로서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다시 13세 소녀로 돌아간다면 독립운동을 또 하겠냐고 묻자 주저 없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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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