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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나를수록 나눌수록 더 행복해지는 3.6kg의 사랑

(사진=일곱 살·아홉 살 자매가 부모님을 따라 봉사를 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왼쪽), 봉사현장에서 처음 만나 어색했던 감정은 온데간데 없이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 사랑의 연탄 (오른쪽))

 

커다란 외투 위로 검은색 앞치마를 멘 작은 꼬마가 연탄 두 장을 짊어진 채 언덕을 오르내립니다. 지치지도 않는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아빠를 따라온 일곱 살·아홉 살 자매도 고사리 같은 손을 모아 연탄을 옮깁니다. 두 자매는 세찬 바람 탓에 연신 흐르는 콧물을 훔치다 얼굴 곳곳이 검은 재로 얼룩져버렸습니다. 최저 기온 영하 5도라는 추위가 잠시나마 잊어집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567-2번지 구룡마을 이야기입니다.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에서 기사 원문 자세히 보기

 

 

여민 옷깃 틈새로 사정없이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이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을 알립니다. 영하권에 머무는 기온 탓에 체감온도가 뚝 떨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있자니 보일러 온도 조절기로 손을 뻗게 되는데요. 불과 30년 전만 해도 겨울을 나기 위해 집안 한편에 쌓아둔 연탄은 더 이상 흔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여전히 연탄에 의지하며 추위를 견디는 먼 듯 가까운 이웃을 만나기 전까진 말입니다.

 

이날 구룡마을에서는 100여 명에 가까운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나르기로 약속했습니다. 사단법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이하 사랑의 연탄)’을 통해 모인 지원자들이지요. 사랑의 연탄은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전달하기 위해 2004년 6월 출범한 단체입니다. ‘따뜻한 한반도’는 연탄을 매개로 남과 북이 교류하고 협력하자는 단체의 작은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른 오전 8시 10분쯤 집합지에 도착해 먼저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지난 3월 말 여러 언론이 보도했던 구룡마을 화재 소식이 뇌리를 스치며 주택들 위로 불길과 검은 연기가 뿜어 나오던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차디찬 공기가 비단 날씨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건너편에 보이는 줄지어 늘어선 화려한 고층 빌딩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괴리감을 더했습니다.
 
1000여 세대 판잣집이 불규칙하게 자리한 서울시내 마지막 판자촌입니다. 비닐과 나무판자로 덧댄 작은 집들 사이로 두꺼운 담요가 가까스로 바람을 막고 있습니다. 좁은 골목길 곳곳에 다 타버려 하얘진 연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상에서 보기 어려워진 줄 알았던 연탄이 이곳에선 겨울 필수품이었습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추운 날씨 탓이었을까.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와 구룡마을 뒤편 대모산에 오르려는 몇몇 등산객을 제외하곤 바깥에 나와 있는 동네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20분가량 지나자 원기준 사무총장을 포함한 사랑의 연탄 소속 직원들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특별한 점은 직원 외에 ‘서포터’로서 현장을 찾은 사람들이었습니다. 20대 취업준비생부터 30대 직장인까지 이들은 봉사활동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곳곳을 챙기는 숨은 조력자들이지요. 매주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배당된 일정에 맞춰 현장을 찾아 서툰 봉사자들에게 도움을 건냅니다. 세 달째 서포터 임무를 수행 중인 오승국 씨는 “주말 이른 아침이지만 가벼운 운동과 봉사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며 참여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오 씨의 첫 연탄 봉사는 친구의 권유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발 벗고 나서서 봉사 현장을 진두지휘할 정도이지요.

 

기부자가 봉사하는 100% 직접 후원 형태

 

(사진=c영상미디어 제공)

 

봉사 시작 시간은 오전 9시 30분.
그럼에도 원 사무총장과 서포터들이 일찌감치 마을에 온 것은 사전답사 때문이었습니다. 연탄이 준비된 위치와 놓일 가구까지의 동선을 확인하고 최종 수량을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봉사가 봉사답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원 사무총장은 “봉사가 늘어지면 오히려 고역이 되고 마을에도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체 없이 흐름을 조정해 예정된 시간에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자원봉사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쑥스러운 듯 부모님 등 뒤로 숨은 일곱 살 어린아이부터 동창들과 함께한 40대까지 여러 세대가 한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이들이 후원한 연탄은 총 2000장. 기부자가 봉사하고 봉사자가 기부하는 100% 직접 후원 방식이지요.
 

봉사에 앞서 준비운동은 필수입니다.
추위에 경직된 근육을 풀어야 혹여 발생할지도 모를 부상을 피할 수 있습니다. 팔과 다리를 쭉 뻗은 채 상체를 구부리자 한결 추위에서 벗어난 듯했는데요. 그때 원 사무총장의 당부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리는 연탄을 구실로 이웃을 만나러 왔습니다. 적은 양의 연탄이라도 온기를 담아서 나르자는 게 목표입니다. 혹자는 우리를 향해 ‘기부천사’라고 칭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설렘과 이웃을 섬기는 자세로 만나러 갑시다.” 연탄 봉사가 좋은 일임은 분명하지만 누군가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으로 낙인찍히는 반면 누군가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송받는 일부 시각에 대한 우려입니다.
 
가벼운 움직임을 끝내면 필수 준비물이 배분됩니다. 앞치마와 팔토시, 목장갑이다. 우비와 마스크를 따로 준비해온 봉사자들도 있었습니다. 마르지 않은 연탄을 들었을 때 옷에 묻어나는 가루를 온전히 덜어내기엔 역부족이지만 요긴하게 쓰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완료했다면 연탄 나르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6㎏으로 갓 태어난 아기 몸무게와 얼추 비슷합니다. 수치로만 보면 그 무게감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직접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헉” 소리가 나오는데요. 보통 성인들은 한 번에 두세 장씩을 나르는데 몇 번 반복하면 팔 근육이 당겨옵니다. ‘한 장이라도 깨면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더해지니 연탄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연탄 나르기 정석을 설명해보자면 내민 배 위에서 손으로 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배로 옮긴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팔에 힘이 가해지면서 무리가 올 수 있다고 합니다.
 
크게 세 그룹으로 분류돼 운반이 진행됩니다. 출발점에 적재된 연탄을 봉사자 손에 얹어주는 사람, 나르는 사람, 옮겨진 연탄을 정해진 저장 장소에 차곡차곡 쌓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골목길을 오고 가면서 연탄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발생하면 거리는 금세 새까만 연탄가루로 뒤덮이기도 합니다. 봉사자들의 역할에 운반 외에 깨끗한 뒤처리도 포함돼야 하는 이유이지요.


연탄 봉사, 결코 이벤트 아냐

 

열 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꼬마는 지쳐갈 무렵인데도 연탄을 들고 재빠른 발걸음으로 쌩하고 달렸습니다. “연탄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답변 없이 배시시 웃어 보이기만 했으나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눈빛이었습니다. 

 

5년 전 마포구 소재 공연장 ‘라이브 앤 라우드’를 통해 연탄 봉사에 나섰다는 한 참가자는 사랑의 연탄과 이번이 열 번째 인연입니다. 그는 “노래로 거둔 수익금으로 연탄을 기부하고 나르면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라며 “힘들어서 다시 못할 것 같았는데 그때 느낀 보람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봉사자로 참석한 영남중학교 1회 동문들은 내내 활기를 불어넣으며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비좁은 공간에서는 일렬로 늘어서 연탄을 하나씩 옮기기도 했는데 허리를 매번 굽혀야 하는 상황에서도 모두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쉴 틈 없는 작업에 어느새 이마와 콧등 위로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였습니다. 동네 어르신이 고마움의 표시로 건네주신 따뜻한 보리차가 온기를 더했지요.
 

 

 

(사진=반복되는 작업에도 연신 미소를 띠며 연탄을 운반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C영상미디어)

 

 

매해 겨울이면 연탄 나눔은 주목받는 봉사활동 중 하나입니다. 연탄 한 장의 공장도 가격은 446.75원입니다. 거리에 따라 운임비가 더해지면 최대 1000원까지도 오릅니다. 외곽일수록 가구 수가 적고 이동이 어렵기 때문에 배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연탄 나르기 봉사의 가치와 의미가 빛을 발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다수가 조명하는 만큼 ‘보여주기 식’ 봉사라는 지적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원 사무총장 역시 봉사한다고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소란을 피워 마을에 피해를 주거나 의전에만 신경 쓰는 모습을 볼 때 굉장히 안타깝다”며 “연탄 봉사는 결코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연탄 기부 대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정해집니다.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들이 조사한 저소득층 가운데 연탄 사용 가구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정합니다. 사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실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구인 경우 현장 추천을 받아 추가되기도 합니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연탄이 쌓였던 공간의 밑바닥이 보였습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준비된 연탄을 고루 배달한 봉사자들이 처음 모였던 장소로 되돌아왔습니다. 말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지만 낯빛만큼은 더없이 환했습니다. 사랑의 연탄 측은 연탄을 형상화한 작은 액정 클리너를 전원에게 선물하며 말했습니다.
 

“연탄 캐릭터의 하얀 눈동자가 꼬질꼬질해지는 데 1년이 걸립니다. 여러분들이 다시 오셔야 할 때를 알리는 순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