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는 문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 12월 7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30년을 내다보는 국가문화비전의 기조 ‘사람이 있는 문화’를 발표했다. 이렇게 기조를 먼저 발표하고, 비전 수립 작업을 시작함을 알리는 것은 문화정책에 있어 새로운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월 도종환 장관 부임 이후 문화정책포럼, 문화자치 연속포럼, 콘텐츠 발전 분과회의, 체육정책포럼, 열린관광 토론회 등 각 분야별로 다양한 방식 하에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각 분야별 새 정부 중장기 계획을 준비해왔다. 또한 10월부터는 문화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위촉한 ‘새 문화정책 준비단’을 구성하여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의 국가문화비전의 큰 틀을 논의해왔다. 현장과 새 문화정책 준비단과의 논의에서 얻어진 결론은 좋은 정책이 그 의도했던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부터 협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는 많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왔다. 2004년 참여정부에서는 정부 수립 이래 최초로 국가 중장기 문화비전인 ‘창의한국’을 발표했다. “이제 나올 만한 새로운 정책 아이템은 모두 나왔고, 우리나라도 정책의 종류와 리스트만 놓고 보면 문화선진국 못지않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문화행정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고, 수많은 새로운 정책들이 도입되고 문화시설들이 건립되었다.
그럼에도 현장과 국민들은 문화정책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현장에서는 창작을 위한 환경이 열악함을 호소하고, 국민들은 문화정책의 결과물이 자신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전문가와 연구진, 공무원 중심으로 수립되는 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이번 ‘문화비전 2030’은 그동안의 정책 수립 과정을 바꾸어 정책 수립 초기단계부터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12월 7일 발표된 기조를 바탕으로 내년 3월까지 각계각층의 참여를 바탕으로 구체화 및 수정·보완 작업이 이뤄질 것이며 이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비전2030을
▲모두가 협력하여 함께 만들고
▲비전 수립을 위한 협치의 과정 자체가 혁신으로 이어지며
▲완성된 것이 아닌, 계속 진화하는 개방형, 진행형 문화비전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협치를 통해 만들어나갈 문화비전의 기조는 문화의 본질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한다. 문화비전2030에서의 ‘문화’는 협의의 문화가 아닌 삶의 총체적인 양식이자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집단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광의’의 문화를 뜻한다. 또한 문화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창의적 활동의 과정이다. 문화에는 좌우가 없고, 문화는 좌우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문화의 본질을 살린 문화비전2030은 진보정부 10년, 보수정부 10년간의 대립과 반목을 넘어서는 미래지향적인 문화정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있는 문화는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중시하는 문화다. 이는 현재 우리의 문화가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도출됐다. 사람이 있는 문화는 일과 삶의 균형으로 얻은 여유를 통해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문화, 자유로워진 예술가의 존재 자체가 만들어가는 공감의 폭을 넓히는 다양한 문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의 본질을 환기시키는 문화, 창의성과 상상력으로 사회혁신을 만들어내는 문화다.
사람이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핵심 가치는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이다. 자율성 가치는 개인의 권리와 생각의 존중을 통해 자존감을 키우고 이 자존감은 다른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존중하는 기반이 된다. 다양성 가치는 다양한 구성원의 문화와 표현을 인정함으로써 서로 다른 삶의 양식과 사고체계를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또한 통제가 획일화된 문화를 낳듯이 다양성은 자율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구현될 수 없다. 창의성 가치는 융합과 사회 혁신을 통해 사람이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역량이다.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에 중심 둔 정책의제 마련
문화비전 2030 ‘사람이 있는 문화’는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누구나 자유롭게 창작하고 향유할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의 자율성 보장’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실현하고 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운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의 다양성 실현’
▲교육, 노동, 복지, 주거, 도시 등의 분야에 문화적 상상력과 역량이 확산되고 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창의적 일자리,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사회의 창의성 확산’을 위해 구체적인 과제를 발굴해나갈 것이다. 8개 정책의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의 창작과 향유 권리 확대’는 모든 사람이 문화를 향유하고 창조할 수 있는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고 문화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방안을 다루는 의제이다.
둘째, ‘문화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장’은 자유롭고 안정된 활동 환경을 조성하여 예술인·체육인의 지위와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의제이다.
셋째, ‘문화 다양성 보호와 확산’은 계층, 인종, 종교, 세대, 성차, 장애 등과 관계없이 다양한 문화를 창조하고 전파하고 향유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방안에 대한 의제이다.
넷째, ‘공정상생을 위한 문화생태계 조성’은 문화, 관광, 체육 분야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여 공정한 활동 생태계를 만들고 유통 독과점, 수직 계열화의 완화를 논의하는 의제이다.
다섯째, ‘지역 문화 분권 실현’는 문화 분권의 관점에서 행정지원체계를 혁신하고 지역이 가진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문화 분권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한 의제이다.
여섯째, ‘문화자원의 융합적 역량 강화’는 문화유산, 문화예술, 콘텐츠, 관광 분야 연구개발을 확대하여 창의적 융합적 문화 역량을 강화해나가고, 한국의 문화 정체성에 필요한 문화자원을 보존하고 활용하여 전통문화가 미래 세대에도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제이다.
일곱째,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혁신’은 입시교육, 도시재생, 생태환경, 안전, 통일 등 사회 문제들을 문화를 통해 해결하고,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논의하는 의제이다.
마지막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협력 확대’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문화협력방안들을 준비하고, 한류가 중요한 문화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제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월부터 청취한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수립한 콘텐츠, 관광 등 각 분야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다음 주부터 순차적으로 발표해나갈 예정이다. 또한 ‘사람이 있는 문화’의 기조 하에 현장과 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와 공론의 장을 열어 8대 정책 의제와 새로이 제기되는 의제를 중심으로 10년을 바라보는 과제들을 발굴해 나갈 것이다.
문화비전2030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협치는 쉽지 않다. 진행 과정이 더딜 수 있고 난관도 있겠지만, 비전의 수립 과정은 우리 문화정책이 ‘블랙리스트’ 적폐 청산을 넘어 신뢰를 회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김성은 | 문화체육관광부 미래문화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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