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희 반에서 매일 5분 동안 욕 안하기 캠페인 시작했어요!"
서울 장충고등학교에서 6년째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권희린(30) 교사는 교직생활 중 가장 뿌듯했던 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지난해 한 남학생이 건넨 소식을 접한 순간이 떠오릅니다. 온갖 비속어를 자연스럽게, 걸쭉하게 사용하는 남학생들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인데요.
권 교사는 그때 아이들 스스로도 충분히 절제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서로에게 비속어를 내뱉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일상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아이들도 비속어의 어원을 자세히 안 이후에는 비속어 사용을 자제하게 되더라고요.
권 교사는 지난해 2학기부터 수업시간의 일부를 떼어 학생들에게 비속어를 가르쳤습니다. 단순히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는 식의 일방적인 채근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왜 비속어를 쓰면 안되는지를 깨우쳐주기 위해서였어요.
"얘들아, '좆같다'의 의미를 알고 있니?" 젊은 여자 선생님이, 그것도 국어 선생님이 자신들의 언어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내뱉는 모습에 처음에는 학생들이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비속어 쓰기를 자처하는 선생님의 노고(?)에 학생들의 마음이 열렸고 이내 관심이 집중됐어요. 어떤 경우에는 제법 진지한 토론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좆같다'의 어원에 대해 들은 한 학생이 "좇같다 대신 꽃같다를 쓰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어요.
그는 최근 거친 남학생들의 언어생활 순화에 도움을 준 비속어 수업 자료를 바탕으로 비속어의 의미와 어원 등을 담은 책 <B끕 언어>(네시간)를 출간했습니다. '띠껍다', '뻘쭘하다' 등 일상 속에서 비속어인 줄 모르고 흔히 사용하는 70여 개의 단어들을 꼽아 의미를 파헤치고, 이들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흥미롭게 다룬 책인데요.
단순한 '비속어 사전'이라기보다 유쾌한 '체험형 교과서'에 더 가깝습니다. 책을 준비하면서 그는 비속어가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합니다. 국어 교사인 자신도 비속어인 줄 모르고 쉽게 사용했던 단어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중에는 입에 담지 못할 만큼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것들도 더러 있었어요. 가령 '빼도 박도 못하다'라는 표현은 성행위를 묘사한 것에서 비롯된 비속어였습니다.
그는 <B끕 언어>가 비속어에 많이 노출된 학생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자신들의 언어생활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길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일반 독자분들을 대상으로 '비속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중 '비속어는 MSG다'라는 정의가 참 와 닿아요. 사용할 때는 감칠맛이 나지만 영양가는 없지요. 독자들이 누군가의 강요를 듣지 않고도 스스로 무분별한 비속어 사용을 줄였으면 좋겠어요. 물론 때로는 카타르시스도 느껴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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