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의견 전달하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죠”
광화문 1번가는 국민이 채워가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하루에도 수백 명의 국민이 오가는 곳인데요. 국민인수위원(국민)은 국민정책 경청단(공무원)을 만나고 의견을 접수합니다. 또는 접수처에 정책만 제안하고 돌아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말이죠, 제안이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국민과 정부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도록 움직이는 사람들, 곳곳에 숨은 공로자가 여기 있습니다. 위클리 공감이 함께 살펴본 광화문 1번가 사람들을 함께 만나볼게요.
■ “접수번호 10번, 불공정 부스 들어갑니다.”
무전기가 울리자 한 청년이 국민인수위원을 경청단에게 안내합니다. 파란 티셔츠를 입은 운영지원팀이지요. 혹여 이곳을 찾은 국민이 불편함은 없는지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피는데요. 처음 광화문 1번가를 찾아 정책 제안이 낯설고 어렵다면 이들을 찾으면 됩니다. 전면에 나서서 접수카드 작성부터 행사 진행, 광화문 1번가 이곳저곳의 안내를 도와줄 거예요.
운영지원팀은 공공프로젝트 에이전시 비타민컴 소속입니다. 그동안 비타민컴은 각종 큼직한 행사를 수차례 맡아왔는데요. 광화문 1번가 현장에 있은 지 3주째라는 비타민컴 소속 운영지원팀 김진선(31) 대리는 벌써 얼굴이 까맣게 탔어요.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지칠 법도 한데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광화문 1번가 여기저기에는 운영지원팀의 땀이 묻어 있답니다. 국민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인데요. 메모지 보드관리, 테이블 배치, 대통령의 서재 정리 등 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지요.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 등신대(等身大)도 마련했는데요. 국민들은 손을 흔들며 환히 웃는 대통령 옆에 서서 인증샷을 남기며 이곳을 즐기기도 합니다. 김 씨는 “광화문 1번가가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현장에서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 경청마루, 국민을 보듬어주는 힐링 공간
서울 홍은동 자택으로 찾아와 “내 억울함을 들어달라”고 소리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밥 먹고 가라”고 권한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이야기가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요.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이 여성 역시 “이야기를 들어줬고 밥까지 얻어먹었으니 됐다. 이제 안 올 것”이라며 자리를 떴다고 하지요.
광화문 1번가에도 이와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 ‘경청마루’가 바로 그곳입니다. 경청마루는 ‘프리리스닝’을 제공합니다. 프리리스닝은 ‘프리허그’를 연상하면 이해가 쉬워요. 허그를 통해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듯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인데요. 쉽게 말하면 프리리스닝은 상담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치료하고 변화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그저 듣기만 하면 됩니다. 그저 듣는 게 무슨 힘이 되겠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작은 관심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하답니다.
광화문 1번가를 찾은 이들 중에 억울한 세월을 보낸 듯 감정이 복받쳐 어쩔 줄 몰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더욱이 먼 곳에서 찾아왔다면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겠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2층에 위치한 경청마루를 권합니다. 이곳은 공무원 경청단과 일종의 역할 분담을 하는 곳으로 서울시 치유활동가 집단 ‘공감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효열(55) 공감인 이사는 “들어주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국민을 보듬어주는 힐링 공간”이라고 경청마루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공무원에게 정책 위주의 의견을 말했다면 공감인에게는 주제와 내용에 관계없이 이야기를 해도 좋습니다. 가족관계, 경제적 어려움, 삶에 대한 고단함 등 당장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을 감싸주기도 해요. 몇 시간 마음을 터놓고 가는 사람들은 국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 후련해합니다.
국민인수위원회는 광화문 1번가를 기획할 때부터 이 공간을 구상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마련하는 곳에서 더 심화된 공간을 마련한 것이지요. 하루 10명 내외의 국민이 경청마루에 발걸음을 합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음으로써 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합니다. 들어올 때의 표정과 나갈 때의 표정이 확연히 다른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격앙된 목소리도 한결 낮아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고맙다. 후련하다”, “이렇게 말할 데가 있었어”, “속이 시원하다”는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립니다.
오혜민(28) 치유활동가는 경청마루를 찾은 한 청소 노동자의 사례를 들려줬습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잘못 버려진 주사기 바늘에 찔려 전염병에 감염됐다고 해요. 그럼에도 병원 측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침묵 요구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마저 등을 돌렸다고 하죠.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 몇 차례 자살 시도도 했다고 합니다. 오 씨는 그의 사연을 몇 시간 들어주고 나갈 때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곳을 평생 기억하고 잘 살아볼게요”라며 경청마루를 나섰어요.
■ 자막통역으로 청각장애인 문턱 낮추다
매주 화·목요일이면 열린포럼이, 토요일이면 국민마이크가 개최됩니다. 무대 스크린에는 발언 내용이 자막으로 나오는데요. 말하는 속도를 자막이 따라가는 걸 보니 보통 실력은 아닌 듯합니다. 글자를 치고 있는 주인공은 이형렬(28) 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 문자통역사. 속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문가입니다.
자막은 청각장애인도 국민과의 소통 공간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한 서비스입니다.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의 손끝에서 문자가 되어 다시 언어가 됩니다. 굳이 자막으로 쓸 필요가 있을까 싶은 어구까지 모두 들리는 대로 전달합니다. 그는 “청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문장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며 “자막통역으로 문턱을 낮춤으로써 청각장애인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스크린에 제공되는 자막통역을 보며 청각장애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자리에 함께한 청중과 감정을 공유합니다. 이 자막은 휴대전화 어플 ‘쉐어타이핑’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전달됩니다. 쉐어타이핑은 세미나, 포럼, 강연 등에서 청각장애인이 실시간으로 화자의 말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요.
이 씨가 현장에서 제공하는 자막은 기록 역할도 합니다. 열린포럼, 국민마이크에서 발언한 내용이 음성으로 녹음되는 동시에 문자로 취합되는 것입니다. 그는 “국민들의 의견을 기록으로 남기고 내가 적은 내용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고 전하기도 했어요.
광화문 1번가 의무실, 여기에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상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종로소방서 소속 소방대원들인데요. 군중이 모인 곳은 언제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방대원들은 늘 응급처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특히 가슴속 깊은 이야기를 전하러 오는 사례가 많아 더욱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의견을 전달하다 흥분할 경우 과호흡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대해 심기순(43) 대원은 “비상시 가까운 곳에 있을수록 빠른 응급처치가 가능하다”고 귀뜸해 주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이 질서 있게 공간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히 지금껏 광화문 1번가에 응급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광화문 1번가가 운영되는 7월 12일까지 약 3주가 남았는데요. 그때까지 이곳의 숨은 공로자들은 변함없이 정부와 국민의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