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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JSA 남한 경비대와 DMZ 북한 방송요원의 리얼 군대 이야기

이 만남 정말 괜찮을까, 약속을 잡으면서도 거듭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JSA 남한 경비대 출신 김태정 씨와 DMZ 북한 GP 방송요원 출신 주승현 씨의 만남. 

4월 27일에 있을 2018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두 남북병사의 특별한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어느 군대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두 사람의 리얼 군대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남북정상회담

(사진=김태정 JSA판문점전우회 사무차장(좌)과 주승현 전주기전대 교수│ⓒC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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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은 어색했습니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서로 나이를 밝히자 “형님이시네요”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왔습니다. 두 사람은 한 살 터울이었습니다. 몇 차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었습니다. 긴장감 속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작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부대 이야기, 훈련에 얽힌 일화를 떠올리며 공통점을 발견하고 맞장구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군을 보면서 ‘우리나라 말을 쓰는구나’ 생각했어요. 너무 당연한 일인데 색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심리적 거리감 때문인 것 같아요.”(김태정)


같은 말을 쓰는 게 새삼 놀라웠다는 말에 의아했지만 이내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반공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그곳에서 온 동년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전 북한에서 직업 군인의 꿈을 갖고 열여섯 살에 입대했어요. 북한은 전투적 사회예요. 최전방 군인은 선망의 대상으로 그만한 사회적 우대도 따랐습니다. 특히 판문점 군인은 ‘공화국(북한)·인민군(북한군)의 얼굴’이라고 부를 정도였죠. 저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무전병,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있었어요.”(주승현)


그가 맡았던 심리전 방송요원은 평양에서 하는 방송을 비무장지대에 중계하고 남한에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를 북한 주민들이 듣지 못하도록 동시에 다른 방송을 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일행이 파주를 찾은 이날도 북쪽을 향해 퍼지는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


이야기는 점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두 사람은 초년병 시절 훈련받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GP를 지나기만 해도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북한 GP가 바로 눈앞에 보여서 늘 긴장한 채로 지냈죠. 그런데 건너편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고요. 결국 긴장도 적응이 돼버렸어요.”(김태정)


1997년쯤 군사분계선 관리가 미흡하다는 최고사령관 지적이 있었나 봐요. 순찰을 강화했죠. 군사분계선을 지나 인근 GP까지 지뢰를 묻어뒀는데 순찰할 때면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살짝살짝 남하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때문에 강원 고성에서는 싸움도 벌어졌어요.”(주승현)


점점 이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훈련 얘기에 야속한 선임들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이유 모를 동질감이 형성되는 듯했습니다.


대중에게 판문점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판문점은 일반인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 속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군복, 장비 등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중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맥을 이어가는 남북한 병사의 교류에 대해서는 사실 관계가 분분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남북관계는 커다란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분명 그들의 군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을 터였습니다. 남북관계가 나쁘면 군 생활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좋아도 이 지역의 군 생활은 여전히 힘듭니다. 그냥 ‘이벤트(사건)’가 생길 때마다 초긴장 상태에 들어갑니다. 남북 모두 그렇습니다. 김태정 사무차장은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했던 일을 제일 먼저 떠올렸습니다. 경계 태세가 강화되고 유난히도 긴장감이 떠돌던 날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주승현 교수는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을 떠올렸습니다. 정상회담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준 건 의외로 북한을 향한 남한의 확성기였습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정말 남북 정상이 만났습니다. 변화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그는 “정상회담 후 비무장지대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다”고 했습니다. 후방에서 개성으로 지원 병력을 보내 지뢰 제거가 시작됐습니다. 지뢰가 놓였던 자리에 도로와 철길이 들어섰습니다. GP 초소가 이동하고 포도 철수됐습니다.


남북 상생 방안 모색하는 기회 됐으면


오는 4월 27일 , ‘2018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게 돼 또 한 번 전 세계의 이목이 판문점을 향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대화의 출구로서입니다. 판문점이 생긴 계기를 떠올려보면 전쟁을 멈추기 위해,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은 어떤 소회를 갖고 있을까.


남북정상회담

(사진=주승현 교수와 김태정 사무차장이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다.│ⓒC영상미디어)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적 셈법이 간단치만은 않다고 봅니다. 다만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정부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대화도 한 방법이에요. 이대로 갈등을 지속한다면 남한도 ‘섬’으로 살 수밖에 없고 북한도 국제사회에서 계속 고립될 거예요. 오는 4월 27일에 있을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김태정)


제게 비무장지대는 애증의 고향과도 같아요. 그래서인지 임진각·통일전망대를 습관적으로 찾고 있어요. 아마 수백 번은 왔을 거예요.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시작이자 끝인 지점이에요. 판문점은 그 분단의 중심이라 할 수 있죠.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것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73년간 이어진 분단에 대한 예의고 화해·통일로 가는 길이 되겠죠. 정상회담 이 남북 평화의 물꼬를 트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길 바라요.”(주승현)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 군대 이야기보다 재밌었습니다. 미세먼지에 가려 북녘 땅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꽃이 피고 있었습니다. 봄을 알리는 바람이 뺨을 스쳤습니다. 한반도 봄바람이 이곳, 파주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