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혁(30)의 콩쿠르 수상경력은 화려합니다. 국제 쇼팽 콩쿠르 3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4위, 여기에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 거부까지…. 그는 놀라운 피아노 연주 실력을 자랑하며 화제와 이슈를 만들어온 글로벌 음악인입니다. 임씨는 “음악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며 “외롭고 힘든 시간을 이겨낼 각오가 필요하다”고 음악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충고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글로벌 예술인이입니다. 그의 활발한 음악활동은 미국·유럽·아시아 등 대륙을 넘나드는데요. 세계를 향한 그의 도전은 나이 열 살 때인 1994년 시작됐습니다. 일곱 살에 피아노를 처음 배운 임씨가 한국의 주요 대회에서 상을 휩쓸자 부모는 큰 결단을 내렸어요.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임씨의 아버지가 아들의 음악교육을 위해 러시아 근무를 자원한 것이죠. 임씨 가족이 모스크바에서 살게 된 배경입니다.
그의 재능은 러시아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요 청소년 콩쿠르에서 잇달아 입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열네 살 때 그는 모스크바국립음악원에 입학했는데요. 이는 이 음악원 역대 최연소 입학기록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가브릴로프·부닌 등을 길러낸 명교수 레프 나우모프(Lev Naumov)를 사사했습니다. 나우모프는 “동혁은 황금손을 가진 연주자”라며 애지중지하며 그를 가르쳤죠. 임씨도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연습에 매달리며 실력을 키워갔습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나우모프 선생님에게 배울 때가 내 음악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시기였다. 음악가로서 발전을 이룬 시기”라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 거부 파문
임씨의 연주 실력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10대 후반부터 주요 국제 콩쿠르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열 여덟의 나이에 출전한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를 시작으로 국제 음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이 대회에서 그는 최연소 1위를 차지하는 동시에 솔로 리사이틀상·오케스트라상·프랑스작곡가해석상·파리음악원학생상·마담가비파스키에상 등 5개 부문을 거머쥐었습니다. 임씨는 롱티보 콩쿠르에서 1위를 한 최초의 한국 음악인이기도 하죠.
2003년에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뜻밖에 수상을 거부하며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큰 파문을 던졌습니다. 대회가 시작된 1938년 이래 처음 발생한 수상거부 사태였어요.
임씨는 “수준 낮은 연주를 했음에도 스승을 심사위원장으로 둔 참가자가 2위에 입상했다”며 거부 이유를 밝혔습니다.
수상 거부 파장이 커지자 향후 임씨가 국제 음악무대에서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임씨는 2005년 제15회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웠습니다. 2007년 6월 그는 제13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1위 없는 공동 4위를 수상했어요. 이로써 그는 세계 3대 콩쿠르를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러시아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1955년 쇼팽 콩쿠르 2위, 1956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 196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1위에 차례로 입상한 이후 처음입니다. 하지만 이때도 임씨의 거침없는 언행은 음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어요.
그는 “연주자들의 기량은 1류인데 이를 심사하는 심사위원이 3류”라며 “당분간 연주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콩쿠르 심사제도를 비판했습니다.
그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이 “당당하고 거침없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임씨는 클래식 음악계의 관행에 아픈 질문을 던져온 인물이죠. 인맥이나 국적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하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바른 소리를 하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어요.
임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음악인도 나타났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피아노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입니다. 그 역시 클래식 음악계의 관행에 꾸준히 비판을 가해온 인물인데요. 동질감을 느껴서인지 아르헤리치는 임씨의 재능을 아끼고 음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후원하고 있습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출시한 음반마다 수상 이어져 실력 입증
아르헤리치는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 베르비에 페스티벌 등에 임동혁을 초청했습니다. EMI클래식의 ‘젊은 피아니스트’ 음반시리즈에도 그를 적극 추천했어요. EMI클래식은 파격적 조건으로 임씨의 데뷔 음반을 출시했습니다. 임씨는 이 음반으로 황금디아파종상을 수상하며 EMI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당시 아르헤리치의 추천으로 음반이 발매된 4명의 연주자 중 임씨만이 유일하게 2집을 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음반 역시 프랑스의 쇼크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어요.
임씨는 한국 음악인들의 재능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는 어려서 러시아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만 공부해도 충분히 세계무대에 설 실력을 쌓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그만큼 한국음악계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죠. 그는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외로운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죠.
“갖가지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며 노력해야 합니다. 클래식 음악인의 삶은 보기만큼 화려하지 않습니다. 타고난 재능에 성공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더해야 합니다. 이를 혼자 힘으로 견뎌야죠. 더러 운도 작용합니다. 음악을 시작하는 어린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성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바로 노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