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공감


“엄마, 내일 봐?”, “엄마랑 아빠는 회사가 집이야?” 야근하는 엄마, 출장 많은 아빠를 둔 다섯 살 첫째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말을 곱씹을수록 미안한 마음이 물안개처럼 퍼집니다. 그래서 1박 2일 체험기 취재는 죄책감에 허덕이는 워킹맘이 맡았습니다. 주말에도 일하는 아빠 때문에 집 언저리에서만 노는 초등학교 6학년생 조카도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물론 남편도 운전기사로 동행했지요.


남편이 토요일에도 일을 했기에 여행은 4월 19(일)~20일(월)에 갔습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숙소인 심청한옥마을(전남 곡성군 오곡면 심청로 178)을 찍으니 저희 집(경기 하남)에서 300km 거리라고 뜨더군요. 뭐, 멀긴 했지만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빗방울이 우두두 떨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아하하. 이럴 땐 일부러라도 웃어야 했습니다.



제가 곡성에 가고 싶었던 것은 섬진강변 철쭉 길을 가는 곡성 섬진강기차(올해는 4월 25일부터 5월 초까지 철쭉꽃 향연이 펼쳐진대요) 사진 때문입니다. 전남 곡성군의 섬진강기차마을(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기차마을로 232)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 ‘2015년 열린 관광지’로 선정됐는데요. 이곳에 가면 왕복 20km를 달리는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 미니기차는 물론 요술랜드와 4D 입체 영상관을 갈 수 있으니 1박 2일 동안 여기만 봐도 좋겠다 싶었지요.


■ ‘한국 관광 100선’에 뽑힌 섬진강기차마을


쉬지 않으면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충남 공주에 있는 탄천휴게소에 들러 우동, 쥐포, 오징어,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늦었어요. 칭얼대는 첫째가 장난감 뽑기 게임을 하느라 시간 좀 썼습니다. 저희가 처음 방문한 곳은 (사)섬진강도깨비마을(전남 곡성군 고달면 호곡2길 119-99)이었어요. 계획에는 없었던 곳인데 실내 공간이 있다기에 들어갔지요.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곳은 2층짜리 사무실 건물과 체험 건물, 공원으로 꾸며져 있는데요. 먼저 전시관에서 국보 제10호와 보물 제343호 등 문화재 재현 작품을 보면서 도깨비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1층으로 내려와선 인형극 ‘호랑이는 내가 맛있대’를 봤습니다. 방문객들이 언제나 관람할 수 있는 라이브 인형극은 도깨비마을 김성범 촌장의 시를 극화한 건데요. ‘착한 아이가 되자’는 내용으로 아주 교훈적입니다.



그 다음에는 김 촌장님이 무대에 올라가 기타를 치면서 동요를 불러주셨는데요. 촌장님은 20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오거나 기분이 좋으면 이런 자리를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조카는 카혼이란 악기를 두드리면서 촌장님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 그런지 즐거워했고, 객석에 있는 아이들은 촌장님이 노래 말미에 ‘으헝!’ 하면 ‘엄마야!’라고 소리치며 까르르 웃었답니다.


1시간.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첫째는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도깨비 빤스는 더러워요, 냄새 나요’란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저는 “드디어 우리 애가 천재성을 발휘해 작사와 작곡을 하네” 하며 감격스러워했지요. 하지만 조카가 “외숙모, ‘도깨비 빤스’란 노래인데요. 아마 유치원에서도 배울걸요”라고 알려주더라고요.


그리고 숙소인 심청한옥마을에 갔어요. 이곳은 곡성의 효녀, 심청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조성됐는데요. 효녀 심청 이야기는 1700년경 관음사 연기설화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마을 곳곳에는 심청이를 기리는 전시물들이 있는 데다가 한옥 14채의 숙박비가 3만 원(평일 2인실)으로 저렴한 편이니 가보시면 좋을 거예요.



■ 고즈넉이 아름다운 심청한옥마을


저희는 초가집 예약이 다 차는 바람에 기와집에 머물렀는데요. 조카는 처음으로 기와집에 머문다면서 환호성을 지르더라고요. 아장아장 걷는 둘째는 문지방을 매만지면서 밖을 내다봤고요. 제가 숙소를 안내해준 관리원 분을 사장님이라고 불러서 그런지 첫째는 “사당님 딥(사장님 집) 좋아”라고 하더라고요. 고즈넉한 아름다운 풍광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러곤 관리인 분이 추천하신 식당에 가서 참게탕을 먹었습니다. 얼큰한 국물과 구수한 참게가 어우러진 맛이 곡성을 닮았더군요. 아이들은 다슬기를 뽀얗게 우린 국물에 밥을 말아 맛있게 먹었는데 여기까지는 아름다웠지만, 아이들이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우아한 식사는 할 수 없었습니다.


오후 7시. 저녁을 먹은 뒤 곡성섬진강천문대(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강로 1234)를 찾았습니다. 곡성군청이 2007년 개설한 이곳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방문객들이 많아서 예매를 해둬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이곳에선 의자를 뒤로 젖히고, 1층 천체 투영실 돔스크린을 통해 달에 관한 15분짜리 영상을 봤는데, 조카는 무척 재미있어했고 다섯 살배기도 토끼의 설명을 조금은 이해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안내 선생님께서 아기는 이곳에 들어가면 운다고 하셨는데 세 살배기는 예상을 깨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후 별자리와 천체를 볼 수 있는 2층 관측실에 갔는데요. 아쉽게도 흐린 날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시늉만 해보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단언컨대 날씨만 좋았더라면 국립과천과학관 못지않은 만족감을 느꼈을 겁니다.


이런 날 야식은 화룡점정(畵龍點睛)과 같은 존재지요. 저녁 8시나 됐을까요. 20여 분을 헤맨 끝에 곡성군청 부근에서 치킨집을 발견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는데, 주인은 영업시간이 끝났다며 돌아서시더라고요. 다행히 다른 곳에서 고소한 통닭을 산 저희는 숙소로 돌아와 열심히 뼈까지 훑은 뒤 단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날씨가 어땠냐고요. 어땠을까요. 네. 아쉽게도 더 흐렸습니다. 아침으로 라면을 먹고는 죽상을 하고 있으니 조카가 “숙모, 비와도 레일바이크 탈 수 있을걸요” 하더군요. 알아보니 레일바이크는 비오는 날에도 하루 5번(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두 시간 단위로 운행) 탈 수 있다고 해서 서둘러 침곡역에 가서는 우비를 사서 입었습니다. 섬진강 레일바이크(곡성군 오곡면 침곡리 45-1)는 침곡역과 가정역을 잇는 5.1km 길이로, 옛 철도를 따라 타는 것인데요. 특히나 봄철 철쭉꽃이 만개할 때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면 최고라고 하는데, 저희는 그 정도까지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 우비 쓰고 레일바이크 체험


레일바이크를 타는 30여 분 동안 조카는 웃음을 잃었고, 콧노래를 자주 부르는 첫째는 안전대를 양손으로 꽉 잡느라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페달을 밟았고, 저와 함께 안전벨트를 맨 둘째는 긴장했는지 엄마 품만 파고들더군요(유아들에게 맞는 의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섬진강변에 핀 꽃들을 카메라로 기록해야 했지만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만 찰칵찰칵 찍었네요.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는데 다행히 종착지인 가정역 건너편에 세워진 셔틀버스를 타고 차를 세워둔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디 갈까?”(나)

“숙모, 6시에 과외가 있으니까 늦게까지 놀다가 가요.”(조카)

“엄마, 사당님 딥(사장님 집. 심청한옥마을)에 가고 싶어.”(첫째)

“이제 이 정도 했으니까 됐지 않아? 집에 좀 가자!”(남편)

“엄마, 엄마, 으아앙 으아앙”(둘째)

정오가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 집으로 출발하면 조카가 과외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하여 곡성군에서 최근 뜨고 있는 요술랜드에 갔습니다.


요술랜드는 섬진강의 도깨비살과 마천목 장군의 설화 등을 소개한 전시·체험 공간인데요. 피곤하다는 운전사와 그새 잠든 둘째를 두고 조카와 첫째만 데리고 갔지요. 하지만 첫째가 갑자기 떼를 쓰더니 요술랜드 입구에서 도깨비 그림들을 보곤 울기 시작했어요. 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순간, 아이가 도깨비불 잡기 놀이 체험코너에 가더니 웃으며 팡팡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착시현상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모니터로 도깨비를 그리고, 도깨비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편지’를 쓰며 놀았어요. 까막눈인 첫째는 선만 그었지만 조카는 또박또박 썼습니다. ‘학원 안 다니게 해줘.’ 저는 조카 소원을 보고 상념에 빠져 소원도 못 빌었지요.


■ 도깨비 만나는 요술랜드


다음으로는 5분 정도 걸어 4D 입체 상영관에 갔습니다. 아직 안전성 검사가 진행되지 않아 3D 영상을 봤는데요. 곡성도깨비마을(6분 30초)과 우주광산모험(6분 30초)이란 영상을 본 뒤 조카는 “조금 어지러웠지만 재미있었다”고 했는데, 첫째는 내내 귀를 손으로 막곤 엄마 등 뒤로 숨어 있었어요. 1시간 정도 흘렀을까. 기차마을에는 놀이기구도 운영됐지만 날이 흐려 발길을 돌렸습니다.



기차마을을 나가려고 하자 첫째가 “더 놀다 가자”며 떼를 썼습니다. 여자의 마음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이 어린이의 마음이었습니다. 차에 탄 뒤 저는 잠시 코를 골았는데 남편이 허름해 뵈는 식당 앞에 차를 대더라고요. 연탄불에 굽는 숯불돼지고기로 유명한 집을 점찍어뒀나 봅니다. 작은 게 무침을 당분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네. 이렇게 해서 아이들과 함께한 곡성 여행을 끝내고 3시간여를 달려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이들도 마치 충전을 완료한 것처럼 기운이 펄펄 나는 원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궂은 날에도 이 정도로 즐거웠는데 날 좋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아쉬움이 남지만 이 또한 아름다운 추억인 법. “다른 돈은 아껴도 아이와 추억 만드는 체험 여행에는 팍팍 돈 쓰라”는 동네 언니들의 조언을 되새기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Posted by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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