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국어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기 이전에 철학자 애덤 스미스와 중국의 철학자 맹자는 모두 공감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습니다.
두 철학자가 말하는 ‘공감’이란 무엇인지 <한국 철학 콘서트>, <철학자의 조언> 저자 홍승기 씨가 소개합니다.
애덤 스미스 - 타인에 대한 공감을 통해 지나친 이기심을 억제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도시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16년 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통합해 영국이 탄생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통합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군은 런던 인근까지 진격해 정부군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의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해 잉글랜드의 경제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물이 <국부론>이었다.
한편, 애덤 스미스는 잉글랜드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에도 주목했다. 잉글랜드에서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도덕적 타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도덕 철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사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철학자였다. 그는 열네 살 때 스코틀랜드에 있는 글래스고대학교에 입학해 철학자 흄에게서 배웠다. 열여덟 살 때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해 신학과 철학 그리고 법학 을 공부한 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도덕철학을 가르쳤다.
(사진=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는 3부작의 저서를 계획했다. 윤리론, 정의론, 정치경제론이 그것이었다. <국부론>은 맨 마지막으로 계획했던 정치경제론에 해당하는 저서였다. 그의 첫 저서는 윤리론인 <도덕감정론>이었다. 그는 이 <도덕감정론>의 출판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생전에 <도덕감정론>이 6판까지 출판됐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첫 문장에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상정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그것과 상반되는 원리가 존재한다”고 했다. 즉, 그것은 이기심과 상반되는 원리를 탐구한 저작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과 상반되는 원리의 핵심을 ‘공감(sympathy)’ 이라고 했다. 그는 공감이란 “타인이 처한 상황에 우리 자신을 설정해놓는 상상을 통해 타인과 완전히 동일한 고통을 느끼고 겪는 감정”이 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수동적 감정보다 능동적 감정을 우선시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을 위해 스스로 희생을 감수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 ‘중립적 관찰자’라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립적 관찰자란 ‘이성이나 양심’을 두고 한 말이다.
애덤 스미스는 그 중립적 관찰자를 가리켜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기애에 빠지는 잘못을 정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이 무한대의 자기 욕망만을 추구하지 않고 욕망을 절제,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 있다. 애덤 스미스는 공감이 상상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감정이라고 했다.
맹자 - 타인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그보다 2000여 년 앞서 중국의 철학자 맹자(BC 372~BC 289)는 그 감정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맹자는 제나라의 선왕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소문을 확인하고자 제나라를 방문했다.
“소가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며 죄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련한 꼴을 내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러면 의식을 폐지할까요?”라고 물었다. 선왕은 “의식이야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소 대신에 양으로 바꾸도록 하여라!”라고 말했다.
맹자가 주목한 것은 선왕의 마음이었다. 선왕은 “소의 가련한 꼴을 차마 볼 수 없다”고 했다. 동물에 대한 마음이 이렇다면, 백성이 어려움을 당할 때 왕은 차마 그것을 두고 보지 못할 것이다. 맹자는 선왕의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즉 공감 능력을 칭찬했던 것이다.
(사진=맹자)
맹자는 그 마음을 가리켜 인애(仁愛)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고 맹자는 생각했다. 맹자의 유명한 ‘성선설’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에 대한 공감은 인간의 착한 본성을 드러내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와 맹자는 모두 공감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을 매우 신뢰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공감은 참다운 인간관계의 초석이라 할 것이다. 아마도 공감 능력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계속 발전해온 것이리라.
(사진=<한국 철학 콘서트>, <철학자의 조언> 저자│홍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