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릇푸릇 새 옷을 갈아입는 봄이 되니, 저도 좀 더 가볍고 화사한 색상의 새 옷을 사고 싶어져요. 인터넷 쇼핑으로 이 옷, 저 옷 골라보며 뭐가 더 잘 어울릴까? 고민하는 제게 동화작가 신정민의 고래 우화 세 번째 이야기가 도착했어요.
제목이 '새 옷을 사려고 한 날'이라니, 고래도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걸까요?
01
‘분홍돌고래는 분홍 옷만 좋아해.’
‘범고래는 얼룩무늬만 입고 다녀.’
‘회색 옷을 입은 귀신고래는 꼭 바윗덩어리 같아.’
고래는 거울을 보았어요.
자기도 날마다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모처럼 다른 옷을 입어보기로 했어요.
02
고래는 옷가게에 갔어요.
‘빨강 옷을 입으면 활기 있어 보일까?’
‘노랑 옷을 입으면 화사해 보이겠지?’
‘파랑 옷은 좀 더 젊어 보일까?’
‘반짝이는 금색 옷을 입으면 부자처럼 보일지 몰라.’
하지만 고래는 고개를 저었어요.
색깔만 다른 것보다는 무늬까지 달라야 뭔가 확 달라 보일 것 같았어요.
03
고래는 줄무늬 옷을 입어보았어요.
“이건 너무 평범해.”
고래는 동그라미 무늬 옷을 입어보았어요.
“이건 도저히 안 어울려.”
고래는 파도 무늬 옷을 입어보았어요.
“윽, 내가 꼭 생선 같잖아!”
고래는 알록달록 꽃무늬 옷을 입어보았어요.
“와우! 꽃밭에 온 기분인걸.”
고래는 활짝 핀 꽃처럼 벙긋 웃었어요.
04
이번엔 별무늬 옷을 입어보았어요.
“야호! 꼭 우주를 나는 기분인걸.”
고래는 두 팔을 벌리고 끝없이 넓은 우주로 훨훨 날아갔어요.
‘그런데 이런 옷을 입으면 나를 보는 이도 꽃밭에 있는 것 같고, 우주를 나는 것 같을까?’
고래는 잠시 생각하다,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떠올려보았어요.
05
“그래! 내가 좋아하는 건 바로 이거야.”
고래는 크릴 무늬 옷을 입어보았어요.
“히히, 맛있는 것만 보이니까 참 좋다!”
바닷속에 살면서 운동장 몇 배만 한 넓이로
헤엄쳐 가는 크릴 떼 속에서
넙죽넙죽 입 벌려 맛나게 식사하던 때가 떠올랐어요.
고래는 오징어 무늬 옷도 입어보았어요.
“와우!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아서 참 좋다.”
바다 속에 살면서 오징어를 한입에 백 마리씩 삼키던 때가 떠올랐어요.
06
“하지만 이 중에서 꼭 하나만 고른다면…”
고래는 고민 고민 끝에 결국은 아무 옷도 사지 않고 그냥 발걸음을 돌렸어요.
“역시 나는 지금 이대로가 딱이야.”
가만 생각해보면 몸에 아무런 무늬가 없으니까
꽃도 별도 크릴도 오징어도 다 있는 것 같았어요.
하얀 종이 위에서 살아나는 바다처럼 우주처럼,
뭐든지 마음먹기 나름, 상상하기 나름이니까요.
“게다가 무슨 옷을 입었어도 그림자는 다 똑같은걸.”
고래는 빙그레 웃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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